|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36) 전신에게 드린 고사 파하니 곡우의 날이 저무네 |
| 2021년 12월 21일(화) 1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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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성북 닭과 돼지 소리로 시끄럽고
전신에 고사 파하니 곡우에 날 저무는데
태수는 봄놀이 하며 살구꽃 핀 마을 오네.
城南城北鬧鷄豚 賽罷田神穀雨昏
성남성북료계돈 새파전신곡우혼
太守遊春勤勸課 肩輿時入杏花村
태수유춘근권과 견여시입행화촌
김종직 죽지곡의 7장에 ‘서방님 뜻은 흔들려 대나무 가지 같지만 제 마음을 연 뿌리 속의 실이라 하지 마세요 / 대나무 가지야 절조가 굳다지만, 연실이야 어찌 바늘보다 낫겠어요’라고 돼 있다. 연뿌리는 끊어도, 그 속에 있는 실은 끊어지지 않으니 남녀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도,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이 남아 있음을 비유한다. 태수는 봄놀이 하면서 할 일을 권하고, 가마를 타고 때때로 살구꽃 핀 마을로 들어온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전신에게 드린 고사 파하니 곡우의 날이 저무네(竹枝曲)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임계(林溪) 유호인(兪好仁:1445-1494)으로 조선 전기의 시인, 문신이다. 유음의 아들이며, 김종직의 문인이다. 1462년(세조 8)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했던 인물이다.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으며, 봉상시부봉사를 거쳐서 1478년에 사가독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성 안의 남북이 닭과 돼지 소리로 매우 시끄럽고 / 전신에게 드리는 고사 파하고 나니 곡우 날이 저무네 // 태수는 봄놀이 하면서 할 일을 권하고 / 가마를 타고 때때로 살구꽃 핀 마을로 드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함양 남뢰골 대나무 가지의 노래’로 번역된다. 원 시제는 ‘함양람뢰죽지곡’으로 돼 있다. 함양 남뢰골은 유호인의 고향이고, 죽지곡은 지방의 풍속을 읊은 노래 한 곡이다. 이 시는 열 수 중 둘째 수로 원운이다. 시골의 넉넉한 형편과 고을을 선치하려는 태수의 힘쓰는 모습이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시인은 스승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부임해 자제들을 교육하고 민폐를 제거하며, 산업을 권장하고 향음주의와 양로례를 시행하는 등 백성교화에 힘썼다. 봄에 들에서 논밭의 귀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들 제사에 마침 곡우 즈음의 비가 내려서 주위가 어둑하다고 하여 농촌의 비오는 봄 풍경을 그려냈다.
화자는 태수가 고을을 돌면서 봄에 밭 갈고 씨 뿌리기를 권장한다고 했고, 태수의 풍류를 말했다. 권농을 하면서 때때로 살구꽃 핀 마을의 주막에 들러서 목을 축이고 시를 읊조리기도 한다고 했다. 허균은 이 시가 ‘아득한 맛은 없지만 농후한 맛이 있다’고 평해 초탈한 맛보다는 세속적 인정이 짙게 스며 있다.
※한자와 어구
城南: 성남. 城北: 성북. 鬧鷄豚: 닭과 돼지 소리 시끄럽다. 賽罷: 굿이 파하다. 田神: 농사를 관장하는 신. 穀雨昏: 곡우 날이 저물다. 곡식을 잘 자라게 하는 비로 봄이 좋겠다. 太守: 지방관, 원님. 遊春: 봄놀이 하다. 勤勸課: 할 일을 권하다. 肩輿: 가마를 타다. 時入: 때때로 들다. 杏花村: 살구꽃 핀 마을.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