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지동시장 / 서정화

2021년 12월 26일(일) 18:54

서정화

한숨이 막창처럼 꼬불꼬불 담긴 하루
역사(驛舍)는 제 그림자의 긴 지퍼를 열고서
쓰리고 설운 위장에 속속들이 데워주네

기 눌린 생을 아는 돼지머리의 너스레웃음
찰기 있게 편육처럼 가지런히 정이 담겨
온종일 속맛 우리고 오는 손님 맞고 있네

광박 피박 독박 쓰며 물 먹은 판을 뒤집듯
불판 위 순대 곱창이 긴 허기를 채워주는
떠날 땐 몸을 푼 이들 뜨끈한 힘을 얻네
(시집 ‘바다 거미 출력소’, 고요아침, 2020)

[시의 눈]

‘동상! 한잔 때리고 가세!’ 하지만 단골인 압해횟집도 지나칩니다. 옆집엔 찰싹 부침개 뒤집는 소리가 지글지글합니다. 빈속에 난타가 또 울리는군요. 갓 튀겨놓은 꽈배기 더미에 창평할머니 앞치마가 부산히도 펄럭입니다. 헌데, 코로나 타격대는 방패도 없는 이들을 분탕했지요. 아짐들은 풍지박산, 뭐 박산가루라도 줍겠다며 헤집습니다. 시장 냄새가 홍감한데 허리 전대는 비었지요. ‘한숨이 막창처럼 꼬불꼬불’한 건 ‘지동시장’ 뿐이겠어요? ‘돼지머리고기가 너스레’를 건네는 순박이네, 가지런한 ‘편육’에 막걸리 발목을 잡는 이쁜네, 다 지납니다. 그 뒤엔 ‘한숨’이 날아오지요. 이제 막다른 길, 아따, ‘광박 피박 독박’ 다 쓰고 ‘판을 뒤집듯 불판 위 순대 곱창’을 뛰적이는 데서는 영 참을 수가 없나 봐요. 에라! 포장을 들치고 우람히 들어서는군요. 한 시간쯤 불쾌해져 둘은 자리를 텁니다. 마스크 속을 술로 풀었으니 ‘뜨끈한 힘’도 생겼겠지요? 사내들이 요란한 트림으로 응답합니다. 서정화 시인은 서울에서 나, 2007년 백수정완영백일장 장원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나무 무덤’(2016), ‘서이치에 기대다’(2019)가 있습니다. 그는 삶의 비의를 찾는 보법을 변주하듯 발랄·신선한 감각으로 시를 빚는 젊은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