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 교수의 일본 작가 비평](27)한국에서 바라본 마쓰다 도키코

아픔 딛고 일어나 日 시문학사에 빛날 기념비적 詩集 출간

2021년 12월 28일(화) 19:02
도쿄전력 투쟁지원 공투 회의 후의 항의행동 (1991)
-도쿄전력 차별철폐 투쟁에 나서-

마쓰다 도키코가 70대 중반에 이르러 자전적 에세이 ‘회상의 숲’을 연재하다가 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다시 현장으로 뛰어든 것은 1978년. 도쿄전력 차별철폐 소송으로부터 2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도쿄전력 차별철폐’는 도쿄전력이 진보적 종업원과 노동자에 대해 정치적 편향성을 이유로 임금이나 승진에 불이익을 주며 차별적 대우를 되풀이하자 거기에 항의하며 내세운 구호다.

도쿄전력의 사상 통제는 전방위적인 압박을 일삼는 행태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들은 특정인에게 인사이동을 가하고 문예 서클 가입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또한 노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적정인원 대책위원회’라는 희귀한 조직을 앞세워 인사권을 남용하며 비판을 잠재우려 했다.

차별을 견디다 못한 종업원 142명은 민주주의를 외치며 일본 독점기업의 소행에 정면으로 맞설 것임을 선포한다.

나아가 그들은 도쿄전력 측에 미지불 임금 반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며 1976년 도쿄, 요코하마, 지바, 고후(甲府), 마에바시(前橋), 나가노(長野) 등의 6개 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다.

2년이 지나자 제2차 총회가 열렸고 마쓰다는 다른 이들과 함께 대표위원으로 선출됐다.

그녀는 종업원들을 대변해 실천적 면모를 드러내면서도 한편 재판으로 투쟁하는 이들의 집회와 재판 경위를 철저히 취재했다. 그리고 도쿄전력의 인권침해, 임금 차별에 항의하는 내용을 담아 ‘당신 속 위선의 모습들’이라는 작품을 약 1년에 걸쳐 신문에 연재한 뒤 출간하기에 이른다.

도쿄전력 인권침해·임금차별 철폐소송 원고단 부단장을 맡았던 스즈키 쇼지 씨는 ‘도쿄전력의 사상차별 문제와 마쓰다 도키코’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다음처럼 회고한 바 있다.


마쓰다 씨는…“도쿄전력의 지독함을 알았다. 이제 잠자코 있을 수 없다.”고 하며 투쟁 속에 말하자면 자신의 몸을 던졌죠. 함께 투쟁하는 멤버의 입장에서 지원하는 의미 이상의 행동을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작은 몸으로 참으로 열정적으로 이쪽저쪽 행동이 전개되는 곳마다 찾아다녔습니다. 특히 ‘당신 속 위선의 모습들’의 집필 준비 당시에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생활 전반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고 말했죠. 그러니까 그즈음부터 녹음기를 한 손에 쥐고 메모를 했습니다.(제8회 ‘마쓰다 도키코를 얘기하는 모임’ 강연에서 발췌, 회보 15호)


마쓰다에게 발로 뛰는 작가=족가(足家)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를 유추해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녀는 반드시 사건 현장에서 들려오는 생생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애썼거니와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사건 전후의 배경을 파악하고자 예민한 촉수를 곤두세우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마쓰다의 심상(心象)은 도쿄전력이 휘두르는 ‘도리에 맞지 않는’ 권력에 대항하려는 세력과 함께하려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만큼 투쟁하는 노동자는 물론 그 가족들을 향한 애정의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장편소설 ‘당신 속 위선의 모습들’ 속에서는 그러한 도쿄전력의 횡포를 전쟁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묘사했다.

특히 지옥과 같은 곳에서 일하는 여성의 고통에 대한 무게를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것으로도 새기기도 했으니 젠더 이슈의 관심을 담아내는 일도 빠뜨리지 않았던 셈이다.

‘당신 속 위선의 모습들’의 여자주인공으로 일컬어지는 다니구치 에이코 씨는 “제가 본점에서 동료 여자애들과 문예 서클을 만들어 처음으로 잡지를 발간했습니다. 그게 완성된 순간에 저의 상사인 수력발전과의 부장에게 불려갔는데, ‘무얼 만들었나? …이런 짓을 한다면 이곳에서 근무할 수 없어’라고 하며…이동을 하라는 전근 명령이 내려졌죠.…네리마(練磨) 지사로 갔는데 거기에서는 ‘저자는 빨갱이다’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어요.”라고 증언한 적이 있다.(‘마쓰다 도키코를 얘기하는 모임’에서의 발언)

마쓰다와 관련한 화제에는 피해자나 증언자의 얘기가 종종 등장한다. 예컨대 ‘당신 속 위선자의 모습들’의 경우도 그렇다.

도쿄전력 차별철폐 투쟁, 그리고 기업이 정치 권력과 결탁해 원자력발전소 투자에 혈안이 된 국민 기만행위를 고발하는 지문에 소설 속 모델의 증언이 생동감을 불어넣는 것이다.


- 탄광 가스폭발 사고 후 소비에트 방문-
기업 종사자들의 인권 문제로 치열하게 고투하던 마쓰다에게 1980년 초 큰 시련이 찾아온다.

결혼한 장녀, 그리고 손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상이었는데, 아끼던 손자가 소아암으로 8세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만다.

광산 노동자의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났기에 어머니가 더욱 자신에게 사랑을 쏟았던 만큼 그것을 잊지 못한 마쓰다는 그 사랑을 고스란히 자신의 장녀인 하시바 후미코에게 되물려주는 모습을 보였다.

‘도쿄전력 투쟁의 어머니’(스즈키 쇼지)로 불릴 정도로 그야말로 법정과 현장을 오가며 피해자 지원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던 그녀다.

지친 몸을 이끌고 가정으로 돌아와 태어났을 때부터 귀여워한 손자 다이치로(太一郞)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그야말로 낙심천만으로 형용할 수밖에 없는 심경이었으리라.

그런 아픔을 견뎌내고 이룬 성과가 단편소설 ‘산 벚나무의 노래’다.

마쓰다는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상황에서 어머니에게 광산을 탈출하자고 종용하던 기억을 소환해 1982년 ‘신문 아카하타’에 발표한다.

물론 쓰라린 체험을 딛고 일어나는 데는 다시 노동쟁의 현장으로 뛰어든 그녀의 사회활동이 디딤돌이 됐다.

북해도의 후쿠탄유바리(北炭夕張) 탄광에서 일어난 가스폭발 사고로 93명이 목숨을 잃은 현장으로 관심의 눈길을 옮기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것이다.

화염 진화를 위해 탄광 갱내로 물을 주입해 희생을 키웠던 이 사고는 정치 권력이 원자력발전소 추진 정책을 밀어붙이다가 빚어진 인재였다.

이 사고로 탄광은 폐쇄됐고, 2천여 명의 탄광 노동자가 직장을 잃었다.

마쓰다는 사건 현장 방문기를 ‘아카하타’에 게재해 무리한 정책을 추구한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질타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이런 와중에 마쓰다에게 일본을 벗어나 새 문물을 접할 기회가 찾아온다.

마쓰다가 소비에트 여행길에 오른 것은 1984년 여름이다. 장녀 하시바도 아카하타 기자 생활을 했지만 차남 사쿤도가 아카하타의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부임해 있었기에 마쓰다의 소비에트 여행을 지원할 수 있었다.

10대 시절 러시아문학에 심취했던 마쓰다인 만큼 톨스토이 저택 근처의 버스정류장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과 더불어 고리키의 집 정원에 핀 자완 꽃을 보고 지은 시가 남겨진 배경이다.


막심 고리키(1968-1936)
-자완 꽃-
자완 꽃에 대해서는 한 번도 노래하지 않았던
고리키의 집 정원에
자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고리키의 집 벽에 어른거리고 있던 것은
고리키의 책과 여행 때 본 빈민의 굶주린 눈동자
목까지 석유의 늪에 잠긴 소년 노동자
깊은 구렁 속 다수의 인간과 혁명가들
세계에 도전한 10월 혁명의 두루마리 그림이었다.

허나 이 집 정원에는 젊은 날의 고리키가
망토를 걸치고 서 있었고
한여름 소련의 푸른 하늘이
그를 온통 풀빛으로 휘감고 있었다
그의 발밑에는 실로 동양적인 자완 꽃이
피어 있었다.

마쓰다 도키코 전시집의 표지
이곳에서 나는 일본의 탄광에서 광석을 줍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얘야 와서 바라, 자완 꽃이 피었구나!”
그건 내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본 자완 꽃
광부 합숙소의 손 씻는 곳 옆 흙무덤에 핀
단 한 그루의 자완 나무에서 핀 꽃이었다.

그 자완 꽃이 고리키의 집 정원에 피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고리키의 집지기에게 부탁해 서너 송이를
꺾어서 받아왔다.

태어난 광산에서 고리키의 ‘첼카시’ 등을
읽은 이후
나는 고리키의 팬이었다
그래서 서너 송이의 자완 꽃은
지금도 나의 노트에 계속 피어 있다
연보라빛을 띤 채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1984년-


일본 간세이가쿠인대 문학박사, 주오대 정책문화종합연구소 객원연구원 역임, 전남과학대 교수
고리키의 자택에서 자완 꽃에 담긴 추억을 회상하는 마쓰다의 모습이 선연히 비친다.

그녀 어머니가 고향 광산에서 가리키던 자완 꽃을 고리키를 애독하며 자란 그녀가 그의 자택에서 발견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터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마쓰다에게 자완 꽃은 시간과 인연의 끈을 잇는, 즉 추억의 향기를 뿜는 매개체나 다름없다.

다음 해 80세를 맞이한 마쓰다는 모든 시를 한 권으로 정리해 ‘마쓰다 도키코 전(全)시집’을 출간했다.

시인 오시마 핫코(大島博光)는 “이 시집 자체가 일본 시에 있어서 하나의 기념비”(‘마쓰다 도키코 사진으로 보는 사랑과 투쟁의 99년’, 140p)라고 평가한 바 있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이 기사는 광주매일신문 홈페이지(kjdaily.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kjdaily.com/1640685724563847215
프린트 시간 : 2024년 05월 26일 15:5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