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37) 큰 강은 천리 길을 흘러 유유히 흘러가누나 |
| 2021년 12월 28일(화) 1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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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불 사위어가는 여관의 새벽에
외로운 성에는 가을비가 내리는데
임 생각 한이 없어라 강물은 흘러가네.
旅館殘燈夜 孤城細雨秋
여관잔등야 고성세우추
思君意不盡 千里大江流
사군의부진 천리대강류
여관방이나 타향에 있을 때 정인을 그리워한다. 시상으로 일궜으니 망정이지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었다면 더욱 진한 맛을 엿볼 수 있으리라. “오늘 밤의 그리움을 그 무엇에 비유하리요, 달은 중천에 떠 있는데, 견우성과 직녀성의 거리는 천만리나 떨어져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사이도 그와 같은 게요”라고 했을 것이다. ‘등잔불이 희미하게 사위어 가는 여관의 새벽인데, 외로운 성에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큰 강은 천리 길을 흘러 유유히 흘러가누나’(寄人)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풍월정(風月亭) 이정(李 :1454-1489)으로 월산대군으로 알려진 왕족 인물이다. 성종과 우애가 깊어 근체 오언율시를 친히 지어줬으며 정자 이름을 ‘풍월정’이라 지어줬다 한다. 지금의 고양 북촌에 있는 별장에서 자연에 묻혀 여생을 지냈다 한다. 문장과 서예가 뛰어났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등잔불이 희미하게 사위어 가는 여관의 새벽인데 / 외로운 성에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구나 // 임을 그리는 이 마음은 한이 없건만 / 큰 강은 천릿길을 흘러 유유히 흘러가누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사랑하는 임에게 붙이다]로 번역된다. 사랑하는 임을 보냈던 슬픔은 크지만, 보내고 나서 상상으로 그리는 마음은 더 없이 컸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모두가 다 그런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보다는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가장 감동적으로 보고 싶고 만나고 싶었을는지도 모른다. 극적(劇的)이며 감동적인 만남을 희구(希求)했을지도 모른다.
시인은 이와 같은 감동적인 마음을 간직했음이 시상의 곳곳에 무르녹아 있음을 알게 하는 선경을 그렸다. 밤이 늦었던지 등잔불이 희미하게 사위어 가는 여관의 새벽은 깊어만 가는데, 외로운 성에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고 했다. 외로운 성의 모습과 시인의 처지를 유사적으로 대비해 보이는 시상의 멋을 흐른다.
화자는 선경의 심회에서 보인 시상 주머니가 역시 같은 모양새를 보인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어 보인다. 임을 그리는 이 마음은 한이 없건만, 큰 강은 아무런 생각 없이 천 리 길을 흘러 유유히 흘러간다고 했다.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유수도 보고 싶어 답답하고 애타는 화자의 마음을 어찌 할 수는 없었을 것임을 알게 하는 상상이다.
※한자와 어구
旅館: 여관. 나그네들이 잠자는 곳. 殘燈: 사위어 가는 등불. 夜: 야밤에. 孤城: 외로운 성. 細雨: 가는 비가 내림. 秋: 가을. 여기선 앞 구와 동반하여 가을비를 뜻함. 思君: 임을 그리워하다. 意不盡: 그리는 마음이 끝이 없다. 千里: 천리 길, 大江流: 큰 강은 흘러만 간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