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누에다리 / 도광의

2022년 01월 02일(일) 19:03

도광의

수밭못에 누에다리 놓았다
월광수변공원에 가려면
누에다리 건너야 한다
구불구불 다리 위로 걸음 옮기면
쌀 삼백 석 쌓인다는 세 개 봉우리 보인다
못가 버드나무 가지 축축 늘어진
오리나무 십 리 길 수밭고개 보인다

종일 못물 찰랑이는
산 가까운 수밭못 아래 동리
눈이 지붕 희게 덮고
누에다리까지 덮이면
박속같이 고운 마음이 모여 사는
소박한 마을이 된다
(시집 ‘무학산을 보며’, 개미, 2020)

[시의 눈]

임인년, 백두호랑이 숲길을 밝혀 걷듯 눈이 마을을 덮습니다. 바람이 는개꽃을 흔들며 대피리로 울립니다. 묵필 바랑 메고가는 나그네가 치는 분패와 씨름합니다. ‘구불구불’ 걸으며 ‘누에다리’ 건너 마을을 봅니다. 집들은 도토리알처럼 모여 있지요. 가난하지만 ‘박속 같이 고운 마음이 모여 사는’ 고만한 집들입니다. ‘쌀 삼백 석 쌓인’ 봉우리가 닿을 듯도 합니다. 하면, 바라보기만 해도 부자였군요. 눈이 덮이면 출입은 불편하지만 아마 마을은 더 오붓해지겠지요. 이제 설입니다. 나도 고향의 흰 ‘박속’으로 들어갑니다. 추억의 망원경인 듯 원잣등 넘어 동구의 팽나무를 바라봅니다. 군관산엔 고봉쌀밥처럼 눈이 뭉개김을 올립니다. 어머니 여의고 이제 가니, 잊은 지 오래됐지요. 그때의 온기가 새삼 내 눈시울을 덥힙니다. 하지만 질러온 칼바람이 그만 베어가 버립니다. 어쩜 난 고향 그리워할 자격도 없나보지요? 도광의 시인은 경북 경산 출신으로 196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197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갑골길’(1983), ‘그리운 남풍’(2003) 이 있습니다. 그는 과작의 시인이지만, 고향에 오래 머물며 유명 시인 제자들을 많이 배출한 스승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