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대청호 오백리길 3구간(호반열녀길)

‘숨과 쉼’…겨울호수에서 텅 빈 충만감을 느끼다

2022년 01월 04일(화) 19:22
근장골전망대에서는 산자락을 굽이굽이 돌고 도는 대청호의 물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과 호수가 만나 빚어낸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겨울 대청호가 쓸쓸하고 고요하다.

하루 일을 마친 저녁처럼 한가하고 여유롭다.

겨울 대청호에서 텅 빈 충만감을 맛본다.

호반의 나무들은 묵언정진 중이다.

성장을 멈추고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를 견디며 내공을 기르고 있다.

나무들은 겨우내 내공을 기른 이후에야 새 생명을 잉태한다.

겨울호수로 떠나는 여행은 밖으로 가는 여행이 아니라 ‘내면으로 향하는 여행’이다.

대청호를 찾았다. 대청호 오백리길 3구간은 냉천 시내버스 종점에서 마산동삼거리 방향으로 1차선 도로를 따라가면서 시작된다.

포장된 도로지만 조용한 시골길이고 지나는 차량도 거의 없어 호젓하다. 도로 아래로 대청호가 잔잔하고 산자락에는 옷을 벗은 나목들이 겨울호수의 고요함을 즐기고 있다. 호수는 군청색을 띠며 추위를 견디고 있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사진 찍기 좋은 명소’라 쓰인 이정표를 만난다. 도로에서 산비탈 임도를 따라 800m 쯤 올라가니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알려진 근장골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근장골전망대에서는 산자락을 굽이굽이 돌고 도는 대청호의 물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과 호수가 만나 빚어낸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수많은 봉우리들이 솟아있고, 산과 산 사이를 돌고 돌아 대청호의 물길이 형성됐다.

동쪽 호수 뒤편에서 첩첩이 다가오는 봉우리들은 산의 깊이를 더해준다. 근장골전망대는 대청호에 붉은 빛을 비추며 올라오는 해를 장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일출명소이기도 하다.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와 1차선 도로를 따라 양구례마을로 향한다. 대청호의 물길이 길안내를 자처한다. 낮은 능선을 이룬 산에는 푸른 소나무와 잎을 떨군 활엽수가 사이좋게 겨울을 나고 있다. 일곱 가구 쯤 되어 보이는 양구례마을 앞을 지나는데,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겨울날 군불 땐 구들방에서 추위를 녹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내 마음도 따스해진다.
겨울잠을 자고 있는 호수에 외로이 떠있는 쪽배는 한적한 겨울풍경을 연출해준다.

마을 앞 호수에는 1인용 소형 쪽배가 몇 척 떠 있다. 대청호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마을주민의 배다. 호숫가에 한가하게 머물고 있는 쪽배와 겨울잠을 자고 있는 호수가 한적한 겨울풍경을 연출해준다. 양구례마을을 지나 포장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등 뒤로 대청호의 푸른 물결이 출렁인다.

사슴골 입구에서 도로를 벗어나 마산동산성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소나무 울창한 산길이 이어진다. 소나무숲길을 걷고 나서야 돌무더기들이 널려 있는 마산동산성에 도착한다. 성곽은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무너지고 없어져 돌무더기들만 남았다.

마산동산성은 대전 동쪽을 경계하기 위해 쌓은 백제시대 산성이다.

대전 동쪽 산지에는 계족산성을 비롯하여 작은 산성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계족산성의 보조 산성 역할을 했다. 동쪽의 옥천지역을 경계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산동산성도 그중 하나다. 대전분지의 가장 동쪽에 있는 이 산성은 금강유역을 경계하기에 좋고, 서쪽으로는 미륵원지에서 문의 쪽으로 향하는 통로를 감시하는 데 유리했다고 한다.

마산동산성에 서니 나뭇가지에 호수 일부가 가리기도 했지만 대청호의 모습이 시원스럽게 바라보인다. 삼국시대 이곳 마산동산성에서는 금강 쪽으로 접근하는 신라군의 모습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을 것 같다.

마산동산성을 지나 솔숲 그윽한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는다.

호숫가로 내려가면 곧바로 관동묘려로 가는 길이 이어지지만 오백리길을 벗어나 호숫가로 난 임도를 따라간다. 잠시 임도를 따라 걷는데 발아래로 대청호의 푸른 물결이 넘실댄다. 종종 겨울철새들이 호수위에 앉았다가 날아가곤 한다. 호숫가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고요한 겨울호수를 가슴에 담는다.

다시 오백리길로 돌아와 숲길을 걷는다. 유난히 활엽수가 많아 길 위에 낙엽이 무수하게 쌓여 있다. 옷을 벗은 나목과 낙엽이 앙상하면서도 포근하다. 잎을 떨군 나목에서 포근함을 느끼는 것은 겨울나무의 내공 때문일 것이다.

산길을 벗어나니 관동묘려가 기다리고 있다.
관동묘려는 열부로 정려를 받은 쌍청당 송유의 어머니 유씨 부인이 1452년 82세로 죽자 이곳에 장례를 지내고 건축한 재실이다.

관동묘려는 열부로 정려를 받은 쌍청당 송유(1389-1446)의 어머니 유씨 부인이 1452년 82세로 죽자 이곳에 장례를 지내고 건축한 재실이다.

‘ㄱ’자형 재실 건물에 양옆으로 2칸씩 방이 달려 있는 민가형태의 재실이다. 관동묘려 앞으로는 대청호가 넘실대고, 호수 건너편 백골산이 바라보인다.

관동묘려를 지나면 숲속으로 난 1차선 포장길이다. 길 아래로는 대청호가 넓게 자리를 잡았다. 넓은 대청호 뒤로 산봉우리들이 첩첩하게 솟아있다. 호수 가운데에 아주 작은 섬 하나가 있어 몇 그루의 활엽수가 우산모양으로 서 있다. 대청호의 작은 섬들과 섬에 서 있는 몇 그루의 나무들이 풍경미를 고조시킨다.

호수는 골짜기 안쪽으로 깊이 들어와 있고, 호숫가에서는 앙상한 갈대와 버드나무들이 추위를 견디고 있다.
거위들이 떼를 이뤄 대청호에서 유영을 한다. 거위 떼 뒤로 2005년 MBC드라마 ‘슬픈연가’ 촬영지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호수 가운데로 가늘고 길게 뻗어나간 산줄기에 듬성듬성 서 있는 나무들은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듯하다.

도로변 작은 주차장에서 오백리길 3구간은 도로를 벗어나 호숫가 오솔길로 이어진다. 호젓한 호반 오솔길에서는 대청호 오백리길 4구간에 있는, 2005년 MBC드라마 ‘슬픈연가’ 촬영지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호수 가운데로 가늘고 길게 뻗어나간 산줄기에 듬성듬성 서 있는 나무들은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듯하다.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다. 이 그림 같은 풍경을 명상정원이라 부른다. 명상정원은 산줄기가 호수와 만나면서 이뤄지는 곡선미와 부드러운 모래가 매력을 더해준다.
명상정원 앞 호수에 떠 있는 작은 섬에는 한 그루의 나목이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사색적이다.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고, 주변은 텅 빈 공간을 이뤄 여백의 미를 고조시킨다.

무엇보다도 압권은 명상정원 바로 앞에 떠 있는 작은 섬이다. 호수에 떠 있는 작은 섬에는 한 그루의 나목이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사색적이다.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고, 주변은 텅 빈 공간을 이뤄 여백의 미를 고조시켰다. 작은 섬 뒤에서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첩첩하게 다가와 심오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이 섬은 물이 빠지면 명상정원과 모래밭으로 연결된다. 물이 빠져 육지와 연결될 때보다도 물이 차서 섬으로 보일 때 훨씬 아름답다.

반도를 이룬 호숫가의 작은 동산을 한 바퀴 돌아 나와 역시 호반을 따라 마산동마을 쪽으로 향한다. ‘레스토랑 더리스’ 아래 호숫가에서 발길을 멈춘다. 이곳 역시 대청호를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다. 거위들이 떼를 이루어 호수에서 유영을 한다. 거위 떼 뒤로 다가오는 호수가 예쁜 겨울풍경화를 그려준다. 겨울 대청호는 여전히 쓸쓸하고 고요하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대청호 오백리길 3구간은 5구간의 백골산과 함께 대청호를 위쪽에서 드넓게 바라볼 수 있는 코스다. 이 코스에서는 백제시대에 축성된 마산동산성도 만날 수 있다.
※코스 : 냉천버스 종점→근장골전망대→양구례→사슴골입구→마산동산성→관동묘려→미륵원→냉천골삼거리→주차장→마산동전망대→마산동삼거리
※거리, 소요시간 : 11㎞, 4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냉천골할매집(대전광역시 동구 냉천로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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