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으로서의 장소’展 오는 11일까지 오월미술관 잊혀진 여성노동의 현장에 숨결을 불어넣다 미술가·사회학연구자·음악가·광주여성가족재단 협업 임동 전남일신방직공장에 담아낸 다채로운 대항기억 최명진 기자

2022년 01월 05일(수) 18:59

김옥진 作 ‘신신당부’

어둡게 뒤얽힌 숲이 표시가 없는 밝은 곳들과 만나는 곳
나는 당신에게 그곳이 어딘지 말하지 않으련다.
나는 누가 그것을 사고, 팔고, 사라지게 하고자 하는지 이미 안다.
유령이 출몰하는 교차로, 부엽토의 낙원 (아드리엔 리치의 시)

방직공장의 역사와 잊혀진 여성노동의 현장을 되돌아보며 그 꿈과 투쟁을 기억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9명의 미술가와 사회학 연구자들, 음악가, 광주여성재단이 오는 11일까지 오월미술관에서 ‘사건으로서의 장소’를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이들은 지난해 6월 한 달 간 임동 전남일신방직공장에서 ‘사건을 생성하는 장소’라는 주제로 작업을 진행했다.

민족미술인협회 광주지회의 협력과 전남대학교 대학원의 후원을 받아 마련된 이번 전시에는 박태규, 김희련, 김화순, 노주일, 최대주, 최재덕, 김옥진, 김신윤주, 김소영 작가와 김현미, 이지현 사회학연구자, 신동석 작곡가, 광주여성가족재단이 참여했다.

이 작업의 시작은 사라질 공간에 대한 일종의 애도의 기록이었다. 그러나 한 달 동안 그 공간과 맺은 내밀한 접촉은 그곳의 모든 풍경과 소문, 사물의 기억을 담은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냈다.

생태철학자 신승철 박사는 전시 서문에서 “1960년 열악한 노동 환경과 근대화 물결 속에서 공장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건설했다. 자신의 힘을 드러내기 위해 일주일 동안 파업에 돌입했고, 여성노동자들은 파업의 행렬 속 자신이 머무르던 곳에 자신의 권리와 희망을 기입했다. 이들은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권리를 가진 노동자이자 지역의 구성원이었다. 그 공간에는 왠지 모를 비밀스러운 속삭임과 증후가 뜨거운 강렬도에 호응하듯 교차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비밀스러운 노동자와 은밀한 다중이 만나는 교차로였을 것이다”고 말했다.

전남일신방직공장이라는 국지적 시공간 속 작가들은 의미적 배치를 새롭게 하고, 그 새로움은 ‘사건을 생성하는 장소’로 다시 태어났다.

화가들은 방직공장 곳곳을 스케치했고, 설치 조각가들은 붉은 색의 부조 작업으로 공장을 형상화, 한지로 일일이 작은 고무신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작곡가는 아드리엔 리치의 시를 인용, 공유지에 대한 음악을 만들었으며, 사회학 연구자들은 여성노동의 입장에서 방직공장의 역사와 잊혀진 여성노동에 대한 글을 써냈다. 광주여성가족재단은 전 방직공장 노동자와의 인터뷰 영상, 광주여성 생애구술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방직공장 여성노동자 인터뷰 영상 및 짧은 구술텍스트 작업에 임했다.

폐허가 된 공장 돌 틈에서 피어난 꽃과 담쟁이, 무너진 돌담벽 너머의 풍경, 공장 안에 화신처럼 나타나 춤 추는 여성의 모습이 형상화됐다.

비극적 삶을 살아간 누이이자 어머니가 아니라 여성 노동자로서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영상이 이러한 작가들의 그림과 함께 어우러진다.

이번 전시 기획을 맡은 김신윤주 작가는 “한 장소가 가진 공적인 기억 너머에서 보이지 않고 잊혀진, 사소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대항기억으로 생성해냈다”며 “이 작업이 임동 전남일신방직공장을 무수한 장소이자 사건으로서 그 역사적 사회적 몸체를 드러내는 과정의 작은 부분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대주 作 ‘노동자 오벨리스크’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