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동란(冬蘭) 곁에서 / 정해송

2022년 01월 09일(일) 18:58

정해송

푸른 날이 다 이울고 갈꽃머리 흩날려도
마음은 흐름 속에 그날대로 한결같지,
예전에 그분 말씀이 난 곁에서 피어난다

이 마음 돌에 들면 돌의 말이 깨어나고
한편으로 물에 들면 물의 말이 풀려나와
저 은하 맑은 소식도 귀엣말로 들려주고

노루며 새들이며 우리네들 가슴이며
다함없이 두루 피는 보이지 않는 것이
오늘은 엄동설한에 사랑 삼 절 피어낸다
(시집 ‘보수동 책방골목’, 세종출판사, 2022)

[시의 눈]

역설적, 그러니까 겨울엔 꽃에의 그리움이 더 많아지지요. 꽃철이 그리운 지 사람들은 ‘눈꽃’, ‘성애꽃’, ‘설화’ 같은 말을 부러 붙여보지요. 예전, 가람 선생은 난 옆에 시를 쓰는 건 그 향을 받아쓰는 일이란 말씀을 했었지요. ‘돌에 들면 돌의 말이 깨어나고 물에 들면 물의 말이 풀려나’오듯 난은 시를 불러옵니다. 창가의 난은 내 눈을 헤아려주듯 미풍에 고갤 젓지요. 나는 그가 꽃피울 날을 달력에 표시해 두곤 합니다. 많은 이가 반려동물 시대를 살지만, 난 반려식물이 더 좋아도 보이는군요. 집안을 어질지 않으니까요. 외출에 돌아오면 반려견은 품속으로 달려들지만 난향은 코로 안겨 들어요. 그는 마스크 때문에 고생한 코를 위무해 줍니다. 아, 오늘은 ‘사랑 삼절을 피어낸’ 그를 보는 아침입니다. 잠깐 햇살에 보촉을 누이고 가만가만 연둣빛 잎을 쓸며 물뿌리개로 적셔 갑니다. 손녀를 젖향에 재우듯 지금 나는 일상에 난향을 섞는 중입니다. 정해송 시인은 경남 고성 출신으로 197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겨울 달빛 속에는’(1984), ‘응시’(2012) 등 많습니다. 그는 사물에 담긴 에피소드를 입사(立射)하여 조화로운 프리즘 시법으로 반사(反射)해내는 이미지의 입체화를 꾀하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