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배은심 여사, 35년 민주화 현장 지킨 ‘6월의 어머니’ 이한열 열사 어머니 故 배은심 여사는… 유가협 이끌며 2009년 용산참사·2014년 세월호 등 투쟁 민주화운동보상법·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앞장 오복 기자

2022년 01월 09일(일) 19:53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가 9일 오전 광주 조선대병원에서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해 6월 9일 제34주기 이한열 추모식에서 인사말하는 배은심 여사./연합뉴스

고(故) 배은심 여사는 1987년 아들 이한열 열사가 숨진 뒤 남은 생 전부를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순천에서 태어나 열아홉에 결혼해 평범한 주부로 살아왔던 배 여사는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역사와 사회현실에 눈뜨게 되고 사회의 부조리함에 앞장서 맞서는 투사가 됐다.

배은심 여사는 아들이 죽은 해 8월,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를 통해 다른 유가족들과 만났고, 이후 의로운 죽음이 있는 현장에 늘 함께했다. 강경대의 죽음으로 촉발된 1991년 5월투쟁 당시에는 가장 많은 죽음을 겪었다고 생전 토로했다.

배 여사와 유가족들은 어떤 투쟁현장에 가더라도 항상 앞장 섰다. 최루탄을 마시고 수도 없이 연행돼 구류를 살고, 두들겨 맞고, 닭장차에 실리고, 길가에 내팽개쳐졌다.

배 여사는 1988년 6월, 유가협 산하에 호남지역의 열사 유가족들을 묶은 호남지회를 만들었다. 이후 영남지회, 수도권지회 그리고 의문사지회까지 결성되면서 지회가 유가협의 조직적 근간이 됐다.

1991년 대학생 분신 정국을 비롯해 2009년 용산참사, 2014년 세월호참사, 2016년 박근혜 하야 촉구 촛불집회 등 억울한 죽음이나 부조리한 사회에 맞서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했다.

1998년에는 민주화법 및 의문사 진상규명법 제정을 촉구하며 422일간 농성을 벌였고, 2007년부터 2013년까지는 유가협 회장을 맡아 전국의 민주화·인권투쟁 현장을 지켰다.

투쟁의 선두에 서다 보니 여러 차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1989년 전교조 해직 교사 복직을 요구하다 연행된 딸을 면회하려다가 폭행을 당하는 등 거리에서 맞고 최루가스를 마시는 일은 다반사였다.

배은심 여사는 1997년 11월부터 유가협의 회장을 맡았다. 유가협은 1998년부터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대국민 홍보에 힘을 쏟았고 1999년까지 이어진 422일간의 국회 앞 농성을 통해 마침내 민주화운동명예회복 및 보상에관한법률과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을 쟁취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유가협 가족들과 함께 20여년째 공전 중인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고 이한열 열사 30주기 추모제에서 배 여사는 “바라는건 오직 민주주의 뿐이다. 추모제는 부속에 불과하다”며 “추모제를 한열동산에서 하니까 마음이 편하다. 예전에 도서관 앞 광장에서 할 때는 마이크 소리 때문에 학생들 공부하는데 방해가 될 까봐 마음이 무거웠다”고 밝혔다.

배 여사는 생전 유가협 가족들과 함께 20여년째 공전 중인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해 노력했다.

이한열을 비롯한 민주 열사들이 여전히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남아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얼마 전 꿈에 한열이 묘지가 보이는데 눈이 한가득 덮여있고 고드름이 얼어있는 거야. 일어나자마자 망월동에 전화했더니 한열이 묘에 눈이 진짜 왔다고 하더라고. 걔가 그런 식으로 한을 얘기하는 것 아니겠어?” 라며 유가족을 외면하는 정치권에 섭섭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배 여사는 이한열 열사가 민주유공자가 되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한 채 9일 오전 향년 82세로 눈을 감았다.

유족은 고인이 안치된 광주 조선대병원에서 향후 장례 절차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민주화운동유가족협회는 “배은심 여사의 뜻을 이어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오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