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돌 하나를 더 얹고 / 천세진
2022년 01월 16일(일) 19:47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신구 세대의 사회적 거리가 코로나19를 겪으며 점점 벌어지고 있다. 그 거리는 이전 시대에 존재했던 ‘세대 차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이질감을 갖고 있다. 과거 어느 시대에 비해 기반을 둔 기술문명의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류의 삶의 지형도를 바꾼 사건과 계기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코로나19도 중대한 분기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 이유는 새로운 기술의 탄생이 아니라, 비대면 문화가 일상을 변화시킨 속도와 확산영역에 있다.

불과 2년 만에 비대면 회의와 모임이 전 세계적으로 일상화 되었다. 모두가 변화의 열차를 흔쾌히 탄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 환경 앞에서 신구 세대가 보여준 태도는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극명하게 갈렸다. 키오스크(터치스크린 방식의 주문 시스템)를 작동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노년의 모습은 적응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그 모습을 지식의 부재로 받아들인다면 큰 오류에 빠진다. 빠른 기술적 변화가 반드시 사회적 선善은 아니기 때문이다.

60년도 되지 않는 수명 속에서 신구 세대 간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사회적 유산의 이전(移轉)이 20세기 중반부터 평균 수명이 20년 이상 길어지면서, 현재의 신구 세대는 문화를 주고받는 집단일 뿐 아니라, 문화를 두고 갈등을 벌이는 경쟁 집단이라는 성격을 추가하게 되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문화 인종’개념을 적용하면 신구 세대는 다른 문화 매체를 사용하는 인류종이다. 그런데 최근 수십 년 사이에 매체의 형식이 기술적 활용에 그치지 않고 인간적 특질 자체를 바꾸어 놓는 상황에 이르렀다. 과거 어느 시대보다 현 신구세대는 사뭇 다른 문화 인종인 셈이다. 그렇다고 기술과 매체 형태 위주의 사유로만 신구세대를 구분할 수는 없다. 그건 전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14세기에 활동한 아랍문명권의 역사철학가 이븐 할둔(1332-1406)의 『역사서설』을 얼마전에 읽었다. 어제 탄생한 저작이라고 해도 손색없는 탁월한 안목과 넓은 세계관에 깜짝 놀랐고, 14세기에서 보낸 깨달음이 먼 세기를 돌아 속속 도착했다. 가장 큰 깨달음은 이븐 할둔과 그의 시대보다 현 시대와 구성원들의 인문학적 사유의 수준이 높지는 않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븐 할둔의 시대보다 높은 현 시대의 자연과학과 산업기술 수준이다. 그 차이가 지금의 문명이 14세기보다 낫다는 평가를 만든 결정적 요인이다. 달리 말하면 기술적 측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만, 인문학적 사유의 측면에서는 지금의 문명이 14세기 보다 그리 낫지 않다는 얘기다.

전주 한옥마을 건너편 ‘바람쐬는길’을 걷다보면 냇가의 돌들을 주워 쌓아놓은 10여개의 돌탑무더기를 만나게 된다. 인류가 살아오며 만든 문화와 문명은 그 돌탑의 형상과 같다. 매 시대마다 돌탑 위에 돌 하나를 얹었다. 우리도 겨우 돌 하나를 얹는다. 다만 가장 나중에 얹을 뿐이다. 여기서 큰 착각이 일어난다. 가장 나중에 얹은 것으로, 자신의 능력이 이전의 모든 것을 수렴하여 정점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문화와 문명을 오로지 축적의 의미로만 받아들인 오류의 사고다. 만약 인간의 인문학적 사유 능력에 ‘축적’의 법칙이 작용했더라면 인류 사회는 이미 놀랄만한 단계로 진보했을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전혀 아니다. 인간은 길게 이어진 칡넝쿨의 어느 한 부분에 불과하다. 개별 인간은 과정의 존재이지, 결코 결과물의 존재가 아니다.

돌탑 전체를 자신이 쌓은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먼저 놓인 돌을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전의 돌들이 어떻게 쌓였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멋진 신세계』를 쓴 올더스 헉슬리의 할아버지이자 ‘다윈의 불독(Darwin’s bulldog)’으로 불리기도 했던 토머스 헨리 헉슬리(1825-1895)는 이렇게 말했다. “조상들을 비웃기는 쉬운 일이다. 하지만 비웃기에 앞서 잘난 체하는 우리보다 하등 뒤질 게 없는 그들이 왜 그렇게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 한층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통렬하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븐 할둔도 깨달았던 인문학적 수준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데도 우리 시대의 인문학적 사유의 수준이 이븐 할둔의 것에 미치지 못한다면 부끄럽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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