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아이파크 붕괴 9일째]“우리가 방패막이냐” 참고 참았던 실종자 가족들 성토 당국, 상인·예비입주자에게 “구조 우선, 큰 소리 내지 마라” 피해 가족 “이해할 수 없어…왜 피해자끼리 사과해야 하나” “현산·광주시·서구청 못 믿겠다…정부가 구조작업 나서라” 안재영 기자

2022년 01월 19일(수) 22:47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신축아파트 붕괴사고 9일째인 19일 피해자 가족 협의회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처음으로 다른 실종자 가족들(모자이크)도 공식 석상에 나와 입장을 밝혔다./안재영 기자

“붕괴 근로자 가족들이 힘들게 있는데 큰 소리 나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우릴 방패막 삼고 있답니다. 왜 피해자들끼리 계속 미안해야 하는 겁니까!”

붕괴 사고 9일째인 19일, 그간 현장 구조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참고 또 눌러왔던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가 터졌다.

수색 작업이 장기화되면서 인근 상인과 주민 등의 피해가 커지고 있지만 광주시와 서구청, 현대산업개발 모두 ‘실종자 구조가 우선이다. 실종자 가족들이 힘들게 있는데 큰 소리가 나면 안 된다’라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수습에는 나서지 않은 채 실종자 가족들을 마치 방패처럼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피해자 가족 협의회’는 안정호 대표를 제외하곤 공식적인 입장 발표나 발언을 삼가해왔다.

그러나 이날 이들은 “구조 과정이 어렵다는 걸 이해하고 답답하지만 기다렸는데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처음으로 함께 목소리를 냈다.

협의회 대표 안 씨는 “상가 피해자·입주 예정자 협의회를 통해 들은 바로는 광주시와 서구청이 ‘붕괴 근로자 가족들이 저렇게 힘들게 있는데 큰 소리 나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며 “왜 피해자들끼리 서로 사과해야 하는지,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며 분개했다.

그는 광주시와 서구청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실종자 가족들을 핑계삼아 시간을 지연해 이들에 대한 피해 보상을 흐지부지하게 넘어가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가족들에게 전해지는 수색·구조작업 내용도 모두 원론적인 것에 그칠 뿐더러 자세한 설명이 없어 의도적으로 수색을 지연하고 있는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의문점을 제기해도 ‘그렇지 않다. 열심히 하고 있다’나 ‘의견 반영하겠다’에 그쳐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며 “현대산업개발은 물론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 광주시와 서구청을 구조 작업에서 배제하고 정부가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타워크레인 해체와 관련해서도 “내일 크레인 해체한다는데 대피령도 안 내려져 있다”며 “터미널에 버스 몇 대만 빼는 것 뿐 다른 대책이 없는데 2차 붕괴라도 발생하면 어떻게 할 지 모르겠다”고 질타했다.

구조 작업과 관련해 이제껏 당국이 해온 발표와 관련해 전날 설치된 전진 지휘소에 대해서도 의문점을 제기했다.

안 대표는 “지금껏 크레인을 해체하지 않으면 내부 구조 작업과 진입이 어렵다고 말했는데 구조 기지가 만들어진 건 뭐냐”며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수도 없이 회의를 진행했지만 진전사항이 아무것도 없다”며 “심지어 구조 과정에서 저희 가족의 신체가 훼손될 수 있는데 이에 관해서 동의조차 구하지 않았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했는데 실제 현장에 온 장관과 차관 와서 뭐했냐. 사진만 찍고 가지 않았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다른 실종자 가족은 지난 17일 예고 없이 현장을 방문해 형식적인 사과에 그친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의 작태에 분개하며 “정주영 회장이 현대를 세울 때 생명 무시하라고 했는지 묻고 싶다. 분신이라도 해야 말을 들어줄 건가”라고 호소했다.

또 다른 실종자 가족은 “사람 사는 아파트를 짓는 건데, 완공 후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왔어야 현대산업개발에서도 움직이고 나라에서도 움직였을 건지, 지금은 실종자가 여섯 명밖에 안 돼서 그런가. 나라에서 신경 써서 최대한 빨리 구조되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안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