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귀거래사 -횡재 / 민병도

2022년 01월 23일(일) 19:22

민병도

전세 값과 화선지 값
쌓이는 책 감당 못해

시골로 이사하면서
나도 부자 되었네

별 열 말 물소리 천 섬,
덤으로 온 달빛 만평
(육필단시조집 ‘삶이란’, 목언예원, 2021)

[시의 눈]

나도 고향 집으로 옮길까 생각합니다. 오래 되었지만 왜 그게 어려운지 참 알 수가 없습니다. 딴은 문명에 익숙해진 탓이겠지요. 핑계라면 끝도 없이 드러나지요. 교통이 불편하고 의료시설이 빈약하고 시장이 멀고…. 아무튼 아예 안 갈 작정인 것들만 꼽습니다. 전용 서재를 두었지만 나도 쌓이는 책 때문에 골머리를 앓습니다. 문인들의 이구동성이란 다 책 타령이지요. 화자가 열거한 중에 젤 맘에 드는 게 ‘별, 물소리, 달빛’입니다. 이것이 내 거라면 책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문득 고향 쪽 하늘을 바라봅니다. 서쪽 ‘별 열 말’이 먼저 날 오라는군요. 아파트 숲 넘어 ‘빛고을로’를 타면 고향으로 간답니다. 한 40분 쯤 걸리지요. 그곳에서 ‘만평’의 ‘달빛’을 받으며 뛰놀 수 있다면 난 시를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 노느라 시는 벌써 잊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뿐인가요. ‘달빛’에 눈을 부비는 일은 몇 십 배나 깊어질 도를 닦는 일이겠지요. 물소리에 귀를 맡기는 건 수백 권을 읽는 것보다 더 맑아질 사유를 진정 얻는 일일 테지요. 하지만 또 의구심이 나네요. 혼자 어떻게 지낼까요? 멧돼지 침범을 어찌 막을까요? 하, 겁이 많은 자, 오늘도 ‘방안퉁수’로 앉아 ‘귀거래사’를 거꾸로 읊습니다 그려. 사래거귀, 살래 거기서? 민병도 시인은 경북 청도 출생으로 197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와 1978년 ‘시문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설잠의 버들피리’(1985), ‘장국밥’(2013), ‘일어서는 풀’(2021) 등 많으며 미술계 경력도 다양합니다. 그는 검은 소와 같은 야성적 가락으로 열정을 담아 굴곡을 넘기는 패기의 시인으로, 시조의 세계화에 애쓰고 있습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