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에는 왜 다선(多選) 시장이 드문가 / 이정록

2022년 01월 25일(화) 19:25

이정록 전남대 교수·前 대한지리학회장

광주에는 다선 시장이 드물다. 민선 1기 이후 지금까지 6명이 뽑혔고, 재선은 박광태 시장(3-4기)이 유일하다. 송언종(1기), 고재유(2기), 강운태(5기), 윤장현 시장(6기) 등 모두 단임으로 끝났다. 이용섭 시장(7기)은 현재 재선 루트를 향해 순항하고 있지만 판단은 아직 이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광주가 타 시도와 비해 다선 시장 배출에 인색했다는 점이다.

왜 다선 시장이 드물까. 시장 본인 경쟁력 때문일까. ‘송조리(條理)’란 별칭을 가졌던 송언종은 반듯한 시정을 펼쳤다. 광산구청장 출신 고재유는 ‘풀뿌리 시장’답게 친근한 시정을 보였다. 탁월한 정치력 소유자였던 박광태는 광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자타가 공인하는 ‘행정의 달인’ 강운태는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시민 시장’을 자처한 윤장현은 ‘열린 시정’을 직접 실천했다. 이용섭은 전임 시장이 시작한 ‘광주형 일자리’를 실제로 만들어 새로운 신화를 쓰고 있다. 역대 시장들은 이런저런 비평도 있었지만 본인들 경쟁력은 충분했다.

그렇다면 지역사회 구조적 속성 때문일까. 현직 언론인 촌평이다. “전남과 달리 광주에서는 모든 민원이 구청장이 아닌 시장에게 몰린다. 민원에 소홀하게 대하면 비판적 여론이 생긴다. 시민단체 목소리가 클 뿐만 아니라 일부는 시장의 성과 평가에 인색해 걸핏하면 ‘해놓은 것이 없다’고 깎아내린다. 이런 비판은 곧 여론이 돼 단임 시장을 양산했다.” 시장이 무슨 일을 해도 제대로 평가받기 힘든 곳이 광주라는 말이다. 참 일리 있는 지적이다.

지역사회 구조적 속성을 중앙 정치와 연결하는 시각도 있다. 언론인 출신 교수 진단이다. “시장 후보는 시민을 보지 않고 중앙당만 쳐다 본다. 중앙당은 민주주의 성지가 된 광주를 특정 지방 유력 정치인 수중에 넘겨주는 것을 꺼린다. 광주의 다선 시장이 당의 거물로 크는 것이 불편할 수 있다. 중앙당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전략 공천이란 명분으로 잘 갈아치운다.” 날카로운 비평이다. 물론 광주에서 다선 시장이 적은 이유를 전술한 몇 가지로 설명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다선 지자체장이 많은 것이 바람직할까. 아니면 단임으로 자주 바꾸는 것이 바람직할까. 그때그때 다르다. 주민이 위임한 권한과 책임 이행에 불성실하고 부패하면 갈아치워야 맞다. 반대로 탁월한 리더십으로 구체적 성과를 만들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면 성장 지속성을 위해 기회를 더 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지자체장이 위민(爲民) 행정과 혁신적 리더십으로 지역 발전 토대를 만들었음에도 지역사회 구조적 속성 때문에 다선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선 지자체장 배출은 지역 정책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지역 발전 정책의 연속성과 지속성 확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역의 미래 발전을 담보할 혁신적 정책을 기획하고 재원을 마련해 추진하는 데는 최소 2년 이상 걸린다. 4년 단임으로 끝나면 자신이 만든 정책의 새싹도 못보고 떠난다. 게다가 후임이 이를 지속시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특정 정책이 기획→입안→발아→성숙 단계로 이어지려면 최소 10여 년 이상 소요된다. 나비축제로 장소 마케팅에 성공한 함평과 전복 산업 메카로 자리 잡은 완도가 좋은 사례다.

광주에서 다선 시장이 많이 나오면 유리한 점은 또 있다. 지역 기반 정치 지도자 축적이 그것이다. 만약 광주에서 지역사회 추앙을 받는 다선 시장이 여럿 나왔다고 가정해 보자. 그들은 다선이라는 ‘정치적 체급’을 토대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우월한 정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광주라는 지역사회는 지역 출신 정치 지도자 양성에 소홀했다. 대선 때가 되면 우리는 지역 기반 정치 지도자 빈곤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전국적인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 배출은 지역에 중요한 정치적 자산인데 말이다.

경제학자 게르하르트 멘쉬는 발전을 ‘체계적 축적 순환의 연쇄(連鎖)’로 설명한다. 특정 사회나 도시가 발전을 지속하려면 혁신 추동력을 조정할 리더십을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그 축적된 자산이 순환적 연쇄로 선순환 할 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광주에서 다선 시장이 적은 까닭은 지역사회에 축적된 자산이 없어 순환적 연쇄가 작동하지 못한 결과 아닐까. 정치적 민도(民度)가 높다는 광주의 이상한 패러독스다.

검증된 시장을 뽑아 재선과 삼선으로 만들어 정치적 지도자로 키워보자. 이제는 광주를 ‘시장하기 힘든 도시’가 아닌 ‘다선 시장을 배출해 정치적 지도자로 키우는 도시’로 만들 때도 됐다. 그런 자산을 축적하는 훈련을 해보자. 그것이 민주주의 성지로 불리는 ‘광주다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