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도밥상을 지키는 사람들](1)순천시 월등면 월곡마을 김순덕씨 닭장떡국 달빛계곡(月谷)의 깊어가는 장맛이 풀어낸 어머니 정성 |
| 2022년 02월 02일(수) 1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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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까치 설날은~
“임인년 설날이 왔네요. 고유의 명절, 설이 되면 우리는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향하죠.”
각자 고향이 있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품고 싶은 고향마을 풍경을 간직한 곳이 있다.
꼬불꼬불 시골길을 따라가면 호수 같은 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오면서 어느 동구로 들어가는데 어머니 품처럼 아늑한 마을과 마주한다. 감나무 가지에 앉은 까치가 노래하고 외양간에서 음메~ 소리 나며 굴뚝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에 마음이 평온하다. 어른 두 명이 두 팔 벌려 안을 정도로 아름드리 당산나무가 마을 앞에 서 있고 보기 드문 다랑이논과 돌담길이 펼쳐지며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에 10여 가구가 안긴 듯한 모습은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고향 같다. 구름도 잠시 쉬어갈 듯 여유로움과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이 고향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곳. 순천시 월등면 월곡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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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동네 어귀 양쪽에 돌무더기가 있어 ‘괴동이’라 불렀고 ‘돌이 많은 마을’ 이라서 ‘돌실’이라고도 했는데 오늘날 한자 표기는 달 월(月)에, 계곡 곡(谷)자를 써서 ‘월곡’이라고 한다.
1600년경 ‘박동지’라는 사람이 처음 들어왔으며 이어 김해김씨가 들어와 마을을 이뤘다고 한다. 희아산 자락과 달개봉 기슭에 자리한 이곳은 아이 울음이 끊긴 지 오래되었고 대부분 머리 희끗희끗한 칠팔 십대 어르신들이 많다. 1975년 전기가 들어오고 80년대 초에 전화가 개통될 정도로 두메산골에서 마을 사람들은 논밭을 일구며 살아가는데 지금은 전국에 소문난 월등 복숭아, 매실을 키워 든든한 농가소득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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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사라졌지만 해마다 설날이면 이곳 마을에서 오랫동안 지켜온 미풍양속으로 ‘동네 세배’가 있었다. 구획을 나눈 후, 집집마다 설에 장만한 떡국, 떡, 전, 한과 등 가득 차린 한 상을 들고 마을 회관에 모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아랫목에 나이 지긋한 동네 어르신들이 앉으면 모처럼 고향 찾은 자식들과 젊은이들은 세배를 공손히 올린다. 오랜 만에 얼굴을 마주하면서 덕담을 나눈 후, 이들은 집마다 준비한 상차림을 놓고 빙~ 둘러앉아 설음식들을 맛본다. 재화가 풍성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아 가래떡을 엽전 모양으로 썰어 끓인 떡국은 설날에 반드시 먹는 우리 전통 음식인데 월곡마을에서는 ‘닭장떡국’을 먹는 게 특별하다.
국립민속박물관이 펴낸 ‘한국 세시풍속 사전’을 보면 닭장떡국이 소고기나 사골육수로 끓이는 요즘 떡국보다 더 오래된 음식이라고 한다. ‘전라도는 토종닭을 간장에 조린 ‘닭장’으로 국물을 낸다’라고 하여 닭장떡국이 남도 향토음식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곳 마을에서는 오래 전부터 집집마다 암탉과 수탉을 키워 마당 뜰에 노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닭이 알을 품어 노란 병아리를 낳으면 또 병아리는 닭이 되어 쑥쑥 알을 낳기를 반복했다. 마당에서 흙 파헤치며 모이 잡아먹고 토실토실하게 자란 토종닭은 설 떡국을 준비하는데 빠져서는 안 되는 귀한 식재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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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세배 때 이집 저집 선보이는 닭장떡국 중에 가장 맛있어서 먼저 동 나는 손맛이 있었다. 그 손맛의 주인공이 바로 김순덕 씨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팔십 평생을 살고 있는 그녀는 동네에서 음식 솜씨 좋기로 제일간다. 김순덕 씨가 손끝 야무진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닭장떡국의 비법을 풀어본다.
닭장떡국 맛의 기본은 조선간장에 달려있다. 동짓달이 되면 김순덕 씨는 직접 농사지은 노란 콩으로 메주를 쑨다. 가마솥에 삶을 때 맛있는 콩물이 넘치지 않도록 된장을 물에 풀어 넣거나 그녀의 말처럼 조약돌 같은 ‘푯돌’을 넣는다, 그리고 콩이 익으면 찹쌀이 흘러내지 않게 올려 고두밥을 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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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니가 장 담글 때 장이 잘 삭히고 맛있어라고 찹쌀 고두밥을 쪄서 뜨끈한 채로 항아리에 넣고 메주 넣고 소금물을 붓더라. 근디 엄니 방식은 난중에 찹쌀이 삭으면서 껍질이 남는데 다 건져 버리니까 난 메주 쑬 때 고두밥을 함께 쪄 부러”
이것만은 친정어머니 방식을 따라하지 않지만 장맛은 더 맛있는 것 같다고 하니 김순덕 씨의 묘수가 아닌가 싶다.
삶은 콩과 고두밥을 같이 갈아서 네모 모양으로 성형한 메주는 볕 좋은 날에 닷새 동안 건조시킨다. 방에 지푸라기를 깔고 그 위에 메주를 올려 이불을 덮은 후, 아궁이에 불을 지펴 뜨끈한 방의 온도를 열흘 정도 유지시켜야 하는데, 그래야 만이 하얀 곰팡이가 피면서 잘 띄워진 메주가 된다. 이어 짚으로 꼰 새끼줄에 메주를 매달아 놓고 방에 두어 달 정도 놔두면서 잘 말린다. 정월에 손 없는 날을 잡으면 먼저 메주에 낀 곰팡이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 놓고. 그녀가 체득한 지혜로써 한 ‘동이’에 메주 두 덩이와 소금 여섯 되씩 정해 옹기에다 메주 넣고 소금물을 붓는다. 잡균을 없애기 위해 뜨거운 숯덩이와 빨간 건고추를 띄운다. 이후 “3월이 되면 찹쌀죽을 쒀서 뜨거운 채 부어야 장이 더 맛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장을 담그고 나서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다. 하얀 장 꽃이 피기에 자꾸 뚜껑을 열어 걷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주인의 발자국 소리에 장맛은 더 맑고 깊어진가 보다. 장 담근 지 넉 달 만에 메주를 건져 내고 체에 걸려 낸 장물을 팔팔 끓여 바로 옹기에 부으면 조선간장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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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장담은 옹기를 새 장, 중간 장, 묵은장으로 분리해 둔다. 놀라운 것은 묵은 장 단지는 자식들도 몰랐던 무려 ‘60년 된 씨간장’ 이라고 하니 그 해묵은 세월 동안 숙성된 맛과 향이 어떨까? 손가락에 찍어 맛보면 안 짜면서 고소하고 단맛이 나는 깊디깊은 풍미. 60년 된 씨간장의 비법에 탄성이 절로 난다. 이 오래 묵은장이 닭장떡국 맛을 결정짓는다.
깨끗이 손질한 토종닭을 먹기 좋게 자른 후 조리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 처음부터 조선간장을 넣으면 닭고기 흰 살이 빨갛게 변하고 떡국을 끓일 때 거멓게 되어 볼품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맹물에 닭고기를 익힌 다음 조선간장에 1-2시간 졸이면 본연의 색을 유지하면서 제대로 닭장이 된다. 물에 닭장을 넣어 팔팔 끓을 때 떡국떡을 넣고 다진 마늘을 넣어 우려낸 후, 달걀지단과 김가루를 고명으로 올리면 닭장떡국이 완성.
뜨끈한 닭장떡국을 맛보면 개운한 국물, 닭장이 배인 쫄깃한 떡국떡, 부드러운 닭고기가 어우러져 음~ 소리와 함께 광대승천. 고소한 김가루 향까지 더해 입맛은 자꾸 당긴다. 설날에 차린 닭장떡국은 온 가족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마음도 담겨져 더 훈훈하다.
고된 농사에 손가락 마디는 나뭇가지처럼 휘어지고 꼬부랑 할머니가 돼 지팡이에 의지하는 여든 다섯의 김순덕 씨.
“우리 장은 묵으면 묵을수록 맛나고 뚜껑을 열면 고소한 내가 나”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가 아끼는 장 담은 옹기는 친정어머니의 손맛을 내림받아 맛을 더하고 두멧골의 햇살, 바람에도 맛있게 익어간다. 몸이 노쇠해가지만 그녀의 장맛은 늘 변함없다. 산골마을에 그윽이 비치는 달빛처럼….
<남도밥상탐험대=최지영·남정자·박기순·조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