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괄호 / 김태경

2022년 02월 06일(일) 19:44

김태경

숨은 말
혹은 숨긴 말
가면 벗은 민얼굴의 말

열 수 없어 닫아 놓고
더 많아 담아놓고

오히려 고요한 수다

괄호 같은
그대도
(시집 ‘액체괴물의 탄생’, 시인동네, 2022)

[시의 눈]

글을 쓰다 괄호를 열고 뜸을 들입니다. 어떤 말을 넣을까. 흔히 부연 설명할 말이 있을 때 괄호를 빌려오곤 하지요. 사실 숨기려는 말이지만요. 관심 없는 독자는 구태여 보지 않지만 요즘은 무슨 ‘녹취록’처럼 흥미를 끌기도 해요. 점잖은 데서 차마 하지 못한 말, 그걸 숨겨 넣어 괄호를 닫곤 합니다. 그치만 마음은 편치가 않을 거예요. ‘숨은 말 혹은 숨긴 말’의 가면을 벗기고 ‘민얼굴의 말’로 돌려질 감당이 크니까요. 해서 나도 괄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듣고 싶어 하겠지만 뭐 닫을 수밖에요. 부끄러우니까요. 그걸 ‘고요한 수다’라 시인은 말합니다. 괄호 속 그대에게 난 할 말이 많습니다만 함묵할 께요. 세상은 괄호가 있어 다행이군요. 없다면 다 노출되어 애써 숨긴 그대의 반점까지 보아야 하겠지요. 난 곱게 화장한 그대를 좋아합니다. 거무죽죽한 기미가 괄호 속에 있지만 보는 설렘이 그걸 덮어버리게도 합니다. 아, 오늘 후레지아 같이 화사한 그댈 만나기로 했지요. 김태경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와 2014년 ‘열린시학’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그는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인간상, 그리고 이를 보는 불안·공포의 심리적 화자가 가볍게 터치하듯 한 촉지화를 그려내는 젊은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