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정체성은 ‘요리’에서 / 이성대 |
| 2022년 02월 10일(목) 1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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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요리를 배우는 동호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문 요리사 선생님을 모시고 한 달에 두어 번 만나 요리를 배웠다. 그 동호회에 참여하고 있는 지인에게 거기에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지인은 처음에는 흔쾌히 좋다고 했지만 며칠 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요리사 선생님이 좀 곤란해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몰랐지만 싫다는 데는 어쩔 수 없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요리모임에 10여명의 회원이 있었는데 모두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여성들끼리 취미로 요리를 배우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는 모임이었는데 젊은 남성이 가입하겠다고 하니 여러모로 곤란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취미삼아 요리를 한번 배워보겠다는 내 희망은 아쉽게 좌절되고 말았다. 직장 근처에 있는 요리학원이 눈에 들어와 전화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전문자격증을 취득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과정을 운영할 뿐 취미로 요리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코스는 없는 듯 했다. 아마 어딘가에서는 취미로 요리를 배우는 과정이 있었을 텐데 내게 인연이 닿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흘러 이제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동영상 공유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1인 방송의 시대가 되었다. 거기다 요리는 여성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인식도 어느 샌가 조용히 사라졌다. 이제 요리를 배우고 싶다면 남녀를 떠나 굳이 학원에 가거나 동호회를 찾을 필요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 요리에 대한 책을 읽고, 다큐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던 나도 어설프게나마 직접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보의 바다라고 하는 인터넷과 1인 방송 사이트에서 수많은 요리강좌가 열리고, 셰프들의 노하우가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무료 강좌들을 보고 배우거나 전문가들의 노하우를 따라하다 보면 어느새 요리 실력이 조금씩 느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우리 사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임에 틀림없다.
요리를 즐거운 취미의 하나로 삼게 되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결코 적지 않다. 그 중의 한 가지는 무엇보다도 요리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저명한 저술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마이클 폴란(Michael Pollan)은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요리를 몰랐다면 인간은 인간으로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영양섭취의 효율성과 관련이 있다. 만약 인류가 요리를 알지 못했다면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영양을 섭취할 수 없었을 것이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여유 시간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동물원에서 고릴라를 관찰하면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릴라는 그 커다란 체구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무엇인가를 씹으면서 생활한다. 오로지 모든 관심사를 먹는 것에만 집중해야 그 체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고릴라가 하루에 필요한 영양분을 좀 더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면 고릴라는 무엇인가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여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고릴라는 좀 더 사고능력이 뛰어난 존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고릴라 등 다른 영장류와 달리 인류는 요리하는 법을 알게 되면서부터 효과적인 영양섭취와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사고능력을 키워 생각하는 존재(Homo Sapiens)로 진화해 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류가 개발한 수많은 기술 중에 요리야말로 인류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기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리는 인류의 생존을 유지하는 생존의 기술이기도 하며, 자연을 인간화하고, 인간을 자연화하는 노동이자 종합예술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남녀의 구분을 떠나 요리가 대중화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실용적이면서 철학적이기도 한 이 요리라는 예술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 어떨까. 그런 기대를 슬쩍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