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D에서 온 편지 / 주홍
2022년 02월 10일(목) 19:41
주홍 치유예술가·샌드애니메이션 작가
새해를 맞이해 한 통의 편지를 이메일로 받았다. TED라는 무대에 연사로 초청하고자 한다는 정중한 편지였다. TED는 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 영감을 공유하는 세계적인 무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한국의 젊은 큐레이터들이 기획한 연사초청편지는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TEDxSNU 2022 Winter Event 연사제안서’라는 제목으로 자신과 기관을 먼저 소개하고 그동안 강연의 주제와 내용들을 간략하게 소개한 뒤, 다음과 같은 편지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세 장의 편지에 담긴 마음의 향기를 잊지 않기 위해 그 부분을 소개한다.


<이번 TEDxSNU 2022 Winter에는 ‘사르다: 선연한 향을 위한 불꽃’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개최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긴 터널 속에서 눈앞의 빛만 쫓아 달려왔기에 그간의 상실에 대해 고민해 볼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 그 문턱 앞에 서서 살라야만 낼 수 있는 가치를 마주하고자 합니다.

TEDxSNU 2022 Winter에서는 소멸과 부재에 대한 관조를 통한 발견과 가치의 과잉 속 사름을 통한 재탄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라이트 박스 위로 모래가 얹어지면 그림자가 지고, 모호했던 빛과 그림자가 모이면 불현듯 선연한 장면이 탄생합니다. 그 섬세했던 표현을 다음 장면으로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흐트러뜨려야만 합니다. 한 번의 손짓 또는 한 줌의 모래로 이전 장면이 사라지는 순간은 아쉬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자아냅니다. 주홍 님의 의지에 따라 사름으로써 살아나는 또렷한 장면들이 모여 주체적인 하나의 작품이 탄생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붙잡고 싶었던 자신만의 가치와 순간들이 한순간 무너지는 경험은 누군가에겐 절망감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이는 이야기를 더 아름답고 온전하게 이어 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작가님께서는 어쩌면 인생과 닮아 있는 샌드아트 작업을 통해 삶에서 필연적인 사라지는 순간을 마주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주홍 님께서 사람을 치유하고 삶의 주체성을 표현하는 작품을 그리는 과정에서 모래라는 소재를 선택하신 이유와, 역사적 사건과 인물, 사회를 담아내신 작품 속 작가님의 가치관, 그리고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연사님으로 강단에 서주신다면,

청중들은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을 넓히고, 사라짐을 고통이 아닌 선택으로, 순간을 허무가 아닌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선물을 향유하고 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 편지를 읽고 ‘살다’와 ‘사르다’라는 두 개의 단어가 선 하나의 차이지만, 의미에서는 너무 다른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살다’는 존재에, ‘사르다’는 사라짐에 방점을 찍고 있다.

TED강의에서 샌드애니메이션 작가인 나에게 주어진 주제는 ‘사르다: 선연한 향을 위한 불꽃’이다. 이 역병의 시대에 욕망의 추동을 멈추고 삶과 죽음, 상실에 대한 깊은 사유의 기회를 준 것이다. 어쩌면 이 편지는 나에게 자신을 돌아보라는 메시지였는지 모른다. 습관과 타성에 젖은 나의 시간을 각성하라며 죽비로 내리치듯 예술에 대한 질문을 다시 잡게 했다.

20명의 젊은 오거나이저 큐레이터들이 모여 기획하는 무대에 연사로 초청되고 보니, 창작자이고 기획자인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먼저 주제에 대한 18분 분량의 글을 쓰고, 파워 포인트용 사진이나 영상자료를 정리해서 보내고 포스터용 인물사진과 5줄 경력을 보냈다. 글은 여러 명의 큐레이터가 읽고 두세 번 정도 연사와 회의를 통해 정정하며 원고를 완성하고 리허설을 거친 후 무대에 오르는 방식이었다. 치밀하고 꼼꼼하게 전달되는 느낌과 시간 등을 챙겨가며 큐레이터와 소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스텝들의 신뢰감을 주는 태도와 친절에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느껴졌다. 아! 이렇게 TED의 무대가 만들어지는구나. 강연 무대를 만들어내는 스텝들을 보며 무대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사르고 있는 아름다운 빛을 보았다. 그 선연한 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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