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양건설 마형렬 회장 회고록(13) 겨울날 벌거벗고 물지게를 지다 |
| 2022년 02월 22일(화) 1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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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원고는 마형렬 남양건설 회장님의 회고록 '막히면 뚫고, 닫히면 열고'를 인용한 것으로, 내용 중 등장하는 이름과 장소 등을 일부 편집했음을 알립니다-
한바탕 자살소동을 벌였던 나는 군대에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나에게 군대는 유일한 탈출구요, 피난처였다. 그때는 작은 끄나풀이라도 잡아 군대를 빠지려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 가운데 병역을 마치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모 대통령 후보의 아들이 병역을 마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세상이 시끄러웠다. 그때만 해도 힘 있는 자들 가운데는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예외였다. 스스로 지원해 군대가기를 원했다. 국민의 3대 의무인 병역을 필하지 않으면 취업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광주까지 올라왔는데 매형이 병무청에 연락해서 나를 빼버린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몇 년 동안 농촌에서 건달 아닌 건달 생활을 해야했다. 24살 때인 1958년 10월 13일 논산행 입영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때는 집안에서 누군가 군대에 가게 되면 친척들과 마을사람들이 모여 환송식을 해주곤 했다. 군대생활의 고생이 심한데다 가끔은 병신이 되거나 죽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군대에 간 것이 열 번 잘했다고 생각한다. 제2의 인생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으름과 절망에 빠져 있던 내게 군대생활을 절제와 인내를 가르쳐 주었고 공동생활의 지혜도 일깨워주었다. 고사포부대에서 원자포(8인치 포) 부대로 옮겨 PX에서 일했기 때문에 고생을 덜한 편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병영추억이 있다. 논산훈련소에서 소대향도를 한 일, 인천 고사포 특과학교 때 중대향도를 맡았다가 동상에 걸려 고생한 일, 여동생 결혼 때 휴가를 받아 나왔다가 하루 늦게 귀대해 겪었던 고생은 잊을 수 없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내가 하루 미귀했던 날 군단장이 점검을 나오는 바람에 부대가 난리가 났다. 나로 인해 포대장이 삭발을 당하고 사병 막사에 숙식령이 내려졌다.
위병소에서 차라리 돌아가라고 권했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부대로 들어갔다. 오늘 도망가면 하루는 편할 수 있을지 모르나 앞날이 창창한 내 인생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포대장이 내린 벌은 눈이 한 자 가까이 내린 겨울날 벌거벗고 맨발로 목욕탕 물을 채우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물지게를 졌다.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진다는 각오였다.
나는 그만 물을 긷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죽기 직전에 동료들이 일으켜 세워 막사에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포대장이 나를 엎드려뻗쳐를 시켜놓고 소대원들에게 돌아가면서 방망이로 때리도록 했다. 엉덩이에서 피가 터지고 기절하고 말았다. 그후 며칠간은 걷지도 못하고 합숙소에서 당번을 해야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아침조회 시간에 손과 발, 얼굴, 복장 검사를 하는 날이었다. 그때 두 사람을 뽑았는데 내가 선발되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몰랐으나 알고 보니 미고문단의 감사에 맞춰 장교 식당에서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감사가 끝난 뒤에도 보내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조회장에 나가다 넘어져서 팔에 큰 상처를 입고 입원한 적이 있다. 그런데 대대장이 와서 말채찍으로 뺨을 가볍게 때리면서 소원이 뭐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PX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했더니 내가 안쓰러웠는던지 발령이 나서 원주로 떠나면서 일주일만에 PX로 보내주었다. PX에 근무했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로웠고 전라도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었던 것이 다행으로 느껴진다.
한때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군대에 가지 않고 빠진 사람은 '신의 아들', 방위병으로 빠진 사람은 '장군의 아들', 현역으로 근무하는 사람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그러나 젊은 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건강하여 군대에 가는 일은 자랑스런 일이라고. 그리고 앞으로 나라를 위해 뭔가 큰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이다. 2년 남짓한 군대생활이 손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로 그렇지만은 않다. 그래서 나는 두 아들 모두들 군대를 보냈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