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사랑 복용 시 주의사항·2 / 정채경

2022년 02월 27일(일) 18:43

정채경

간격을 무시하고 사랑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이킨 당신
여기가 여우각시별인지 어린왕자별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UFO에 잘못 탑승한 당신
이 별에서 연애는 습관이고 중독이고 삶이지만
결혼은 고리타분한 선택이라는 것을 모른 채
사랑은 직진이라더니, 결국
제 자리로 돌아와
탈진으로 몸을 떠는 당신
사랑의 구성 성분에 대해 무지한 당신
사랑은 용법, 용량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복용 시 주의바랍니다
(시집 ‘별일 없다고 대답했다’, 문학들, 2021)

[시의 눈]

‘사랑의 묘약’, 도니체티의 오페라가 있었지요. 묘약이라선지 ‘용법·용량’이 표시돼 있질 않습니다. 그래 과잉복용 해 부작용이 많지요. 난 그런 거 없는 ‘여우각시별’이나 ‘어린왕자별’에 가려했어요. 냄새나는 이 ‘지구’별로 오는 게 아니었는데 참. ‘UFO에 잘못 탑승’했나 봐요. 여긴 무지한 사람들이 많군요. ‘돈=결혼’으로 야망에 중독된 이가 넘쳐나요. 아니, ‘욕정=폭력’을 배워 아이에게까지 덤비는 이도 있다니까요. 이 별에선 ‘사랑 복용 시 주의’가 요해요. 헌데요. 이젠 사랑이고 결혼이고 뭐고 없어졌답니다. 황폐한 빌딩만 플라스틱밭에 우후죽순처럼 돋아나 있지요. 자본의 냄비로 취업의 라면을 끓여 밥상에 올리는 곳이에요. 그래, 젊은이들은 ‘탈진’해 떨지요. 거, 멈추면 될 게 아니에요? 욕망이 기차처럼 달리는데 제어를 해요? 난요, 이념도 나이도 성별도 상관없는 사랑이 필요해요. ‘어린왕자별’에서처럼 순수를 원한다니까요. 나 지금 ‘여우각시별’로 돌아갈래요. 정채경 시인은 목포에서 나 2006년 ‘열린시학’으로 등단해 시집 ‘라이브뮤직 위에 장례식장이 있다’(2016)를 냈습니다. 그는 객체의 비극적 현상을 담담한 감수성과 풍자의식의 눈으로 확인해 보이는 젊은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