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남원 교룡산 둘레길 고난의 역사 지켜온 교룡산성…그 숨결을 보고, 듣고, 담다 |
| 2022년 03월 08일(화) 1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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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교룡산성국민관광지주차장에 주차를 하고나니 ‘교룡산 둘레길’ 안내도가 길안내를 해준다. 교룡산 둘레길은 주차장 옆 임도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교룡산 허리를 돌아가는 기존 임도에 이정표를 붙여 둘레길로 활용하고 있다.
길은 구불구불 산허리를 돌아서간다. 길은 산의 지형을 따라 물 흐르듯 곡선을 그으며 이어진다. 길 주변은 숲으로 덮여있어 부드럽고 포근하다. 완만한 임도라서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임도를 따라 걷다보면 산자락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만난다. 교룡산 북쪽을 지날 때는 임도 아래로 밭이 넓게 자리한다. 교룡산 자락을 개간해 만든 밭에는 대부분 감나무가 식재돼 있다. 곧 생장을 시작할 감나무에는 퇴비를 듬뿍 뿌려놓았다. 감나무는 퇴비의 영양분을 흡수하고 햇빛과 비의 도움을 받아 가을이면 먹기 좋은 열매가 생산될 것이다.
우리는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걷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깊은 침묵에 빠져들기도 한다.
침묵 속에서 원초적인 자연과 교감한다. 자연과 교감을 하고 있을 때는 ‘나’라는 실체도 잊어버린다. 무아(無我)의 경지에 들어선 것이다. 불가에서는 무아의 경지가 지속돼야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난다고 했는데, 나는 금방 ‘나’라는 실체로 돌아와 버린다. 그래도 산길을 걸으며 잠시라도 무념무상의 시간을 가지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교룡산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난다. 부부가 함께 걷는 경우가 많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길을 걷다보면 중간 중간 쉬었다 갈 수 있는 사각정자도 있다. 임도는 숲 사이로 나 있지만 가끔씩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다. 산에 기대고 들판을 마당삼은 마을들은 언제 봐도 포근하다. 마을과 마을, 지역과 지역을 길이 이어주고, 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하천을 이루어 마을과 들판을 적시며 흘러간다.
임도 밖에서 다가오는 풍경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기자기한 암봉을 이루고 있는 문덕봉·고리봉이다. 광주-대구고속도로 남원터널 위쪽 능선이 남쪽으로 뻗어가면서 문덕봉 고리봉 같은 아름다운 산을 만들어냈다. 이 산줄기는 순창 쪽에서 내려오는 섬진강을 만나 수명을 다한다. 문덕봉·고리봉 등산로는 산악인들에게는 인기 있는 등산코스다.
임도는 잠시 대밭 사이를 지나기도 한다. 주로 나무숲과 함께 걷다가 대숲을 만나니 청신한 기운이 느껴진다.
커다란 바위에 작은 돌들을 쌓아놓은 돌탑들이 정성스럽다. 바위에는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늠름하게 자라고 있다. 단단한 바위에서 도저히 생존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렵사리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소나무를 바라보니 생명력이란 저토록 강인한 것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해준다.
임도 주변은 붉은 줄기에 곧게 솟은 적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솔숲 사이를 돌고 돌아가는 길이 물결처럼 굽이쳐 흐른다. 간벌을 해놓아 적당한 여백까지 이루고 있는 소나무 숲에서 그윽한 향기가 전해진다. 곧은 줄기와 푸른 잎의 적송이 고고한 선비의 풍모를 풍겨준다.
교룡산성국민관광지 근처에 도착하자 주변에 체육시설이 많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둘레길을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 정도 걸렸다.
우리는 여기에서 교룡산성과 선국사를 다녀오기로 한다. 주차장에서 교룡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옆에 동학공원이 조성돼 있다. ‘동학성지 남원’이라 쓰인 조형물이 서 있고, 주변에는 동학과 관련된 시비 등이 있다.
교룡산과 동학의 인연은 창시자 수운 최제우선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운 최제우는 1861년과 1862년 사이에 교룡산성 안에 있는 선국사 은적암(덕밀암)에 은거하면서 수도와 동학이론을 집필했다. 여기에서 수도가, 권학가, 동학론, 통유문, 수덕문, 몽중노, 소문답가를 썼다. 이는 도학경전인 ‘동국대전’의 절반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특히 동학론에서 ‘도(道)는 천도(天道)라 하나 학(學)은 동학(東學)’이라 해서 처음으로 ‘동학’을 명명했다.
1894년 여름, 동학농민혁명 당시 김개남이 이끄는 농민군 세력은 남원성을 점령하고 교룡산성 안에서 주둔하면서 활약하다가 끝내 여원치에서 관군에게 패했다. 위쪽에 있는 교룡산성에서 동학농민군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동학공원을 지나 가파른 길을 올라서니 교룡산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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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룡산성은 교룡산을 둘러싼 포곡식 산성으로 길이가 3천120m에 이른다. 백제 때 축성된 것으로 추측되는 교룡산성에는 우물이 99개가 있었고, 군창과 무기고도 있었다고 한다. 동서남북 4대문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동문인 홍예문만 남아있다.
정유재란 때에는 이곳에 곡식과 무기, 소금, 장을 보관하고 많은 승병이 기거했다. 교룡산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593년 승병장 처영이 홍예문을 다시 쌓는 등 크게 보수했다.
이보다 앞서 교룡산성은 고려 말 왜구의 침략 때(1380년)에는 이성계 장군의 황산대첩에 기여했다. 삼도도순찰사로 임명된 이성계가 이곳 교룡산성에서 군사의 전열을 정비한 후 여원치를 넘어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쳤다.
홍예문을 통해 산성 안으로 들어간다. 홍예문은 교룡산성에서 가장 중요한 통로역할을 했던 동문으로, 원래 문루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홍예문만 남아 있다. 홍예문을 들어서니 길 오른쪽에 비석군이 있다. 교룡산성을 지켰던 역대 무관 별장들의 기적비들이다.
가파른 길은 선국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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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호남지역 6개 군현에서 거둔 군량미를 바로 이 교룡산성에 보관했는데, 이때 선국사는 교룡산성을 지키는 수비대의 본부 역할을 했다. 선국사는 역사의 현장에서 평상시에는 불법 수행도량으로, 전시에는 방어진지 역할을 하며 역사의 흥망을 함께 해왔다.
지금은 모든 시름을 뒤로한 채 인적 드문 깊은 골에 홀로 고즈넉이 들어앉아 있다. 대웅전 앞 7층 석탑 옆의 배롱나무 한 그루가 고요한 절을 지키고 있다. 여름철에는 배롱나무가 꽃을 피워 작은 절을 화사하게 꾸며준다. 대웅전 뒤편으로 올라가니 선각사 아래로 남원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교룡산 둘레길은 교룡산 허리를 한 바퀴 도는 길이다. 둘레길을 걷고 나서 교룡산성과 선국사를 답사하는 방식으로 코스를 짜면 좋다.
▶코스 : 교룡산국민관광지→보성마을 진입로→금강마을 진입로→기린봉 진입로→교룡산국민관광지(원점회귀)
▶거리, 소요시간 : 7㎞, 2시간 소요
(교룡산국민관광지→교룡산성→선국사→교룡산국민관광지 1.2㎞, 30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교룡산국민관광지주차장(전북 남원시 산성순환길 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