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명화이야기]‘전쟁’(WAR) 아주 사소한 진심, 그리고 지혜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괴물같은 세상, 구원은 어디에…

2022년 03월 10일(목) 19:29
김환기 作 ‘피난 열차’ <위키피디아 검색>
나라 안팎으로 연일 시끄러운 일들이 한창이다. 안으로는 대선을 비롯해 밖으로는 각종 편파판정으로 시비가 붙어 SNS상에서 흡사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진 것처럼 보였던 베이징 동계 올림픽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실제 전쟁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올림픽 시작 전부터 두 나라 간 전운이 맴돌더니 지난달 24일 협상이 급작스럽게 결렬됐고, 공습경보와 함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로 침공하며 결국 전쟁이 시작되고야 말았다.

동시에 도시를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의 차량 행렬은 넘쳐났고, 우크라이나를 향해 날아가는 전투기들 그리고 폭격으로 인해 파괴된 시가지 곳곳의 처참함은 중계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다.

아직 초반이라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러시아와 이해관계가 얽힌 주변 강대국 들이 하나같이 전쟁 규탄에 입을 모으면서도 현실적인 원조는 하지 못하고 있어, 결국 힘없는 우크라이나만 혼자 외롭게 맞서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연일 보도되는 일반인들의 사망 소식과 주검들은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다.

TV 속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로 떠나야 하는 군인이 자신의 딸과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시간을 마주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안쓰럽기 이를 데가 없었다.

게다가 간신히 받아주겠다는 주변국으로 떠나기 위해 열차를 타러 도착한 시민들은 북새통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 몸만이라도 피할 요량으로 그나마도 차에 모든 짐을 두고 내렸다며 짓던 허탈한 표정은 잊혀지지 않는다.

정들었던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하는 이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우리도 6·25라는 큰 전쟁을 겪은 적이 있고 여전히 생채기 같은 기억이 남아있어 이번 사태가 남일 같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들은 예술작품으로 승화돼 여러 번 회자됐고 그중 김환기 화백의 작품 ‘피난 열차’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림에는 네모난 철 깡통 열차 속에 말 그대로 시루에 담긴 콩나물들처럼 빽빽이 몸을 담고 피난을 떠나고 있는 난민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열차를 타고서 고된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들의 심정은 지금 전쟁을 맞이한 우크라이나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부산에서 제작된 이 그림은 당시 해군 종군화가로 활동하던 화백이 그린 것으로, 피난민들이 배를 타러 가기 위해 대거 몰려들었던 부산에서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작가만의 스타일로 재해석된 그림 속 마치 성냥개비같이 표현된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뚜껑도 없이 높낮이 또한 제각각인 열차의 모습에서 어렵고 힘든 상황을 생동감 있게 담아내는 작가의 역량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태극기를 닮은 빨강 땅 위에 대비되는 단색조의 파란 하늘 그리고 홍조 띤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들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희망 또한 읽혀진다.

이렇게 무고한 사람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기는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들이 서로 맞물릴 수밖에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요인은 ‘서로 간에 영토를 두고 세력을 증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쟁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어나는 일이라는 결론이다.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참혹한 전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끔찍한 폐해는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희생을 동반한다.
고야 作 ‘1808년 5월 3일 : 마드리드 수비군의 처형’ <위키피디아 검색>

특히나 민간인에 대한 학살과 피해가 가장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국민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 ‘1808년 5월 3일 : 마드리드 수비군의 처형’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스페인 내정 간섭을 시작한 프랑스에 대한 반발로 벌어진 이 반란은 1808년 5월2일 마드리드에서 시작됐고, 다음날인 5월3일부터 프랑스 군의 무자비한 학살이 이어졌다. 결국 이를 계기로 스페인은 독립전쟁을 시작했고, 영국군의 원조를 받아 프랑스군을 몰아낼 수 있었다.

그림에도 잡혀 온 스페인 포로들을 처형하기 위해 프랑스 군인들이 총을 겨누고 있는 장면이 묘사돼있다. 화면 오른쪽에는 포로들을 향해 총을 겨눈 군인들이 기계처럼 일렬로 서 있다. 그 맞은 편으로는 다음 순서를 기다리며 겁에 질린 채 방금 전 처형당한 시체들 위로 선 시민들의 처참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 무리 중 한가운데서 양팔을 치켜든 남자가 유독 눈에 띈다. 칙칙한 다른 이들의 의상과는 달리 그가 입은 새하얀 셔츠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형장에 선 그를 흡사 곧 십자가에 못박힐 예수처럼 보이게도 한다.

평범한 시민이자 무고한 인간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이 그림에서는 고야가 담고자 했던 전쟁에 관한 참상을 그대로 살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잔인한 인간의 면모도 여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정말 내 편, 네 편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그리고 내 편이 아니라는 단순한 이유로 서로를 적대시하고 미워해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 모두는 각자의 득과 실을 따져가며 발생하는 이 무력충돌의 결말이 ‘돌이킬 수 없는 파멸’뿐이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해서 ‘피 튀기는 전쟁은 절대 수단이 될 수가 없다’라는 뜻이다.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일인지는 전쟁을 주관하는 두 명의 신 아테나와 아레스를 보더라도 금방 알 수 있다. 둘은 성향적으로 서로 달라 비교가 되기도 하는데, 상극인 이 둘의 관계에 대해 묘사해 놓은 예술작품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늘 아테나가 아레스를 훈계하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다비드의 작품 ‘아레스와 아테나의 전투’에서도 매한가지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 作 ‘아레스와 아테나의 전투’ <위키피디아 검색>

트로이 전쟁에서 크게 충돌한 둘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정의와 평화를 수호하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 앞으로 살육을 주저하지 않고 흉폭함을 보였던 아레스가 쓰러진 채로 역시나 혼나고 있는 모양새이다.

<이현남· 전남대 미술이론 박사수료>
제우스를 아버지로 둔 남매이자 ‘전쟁의 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레스가 늘 훈계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완력의 장인 전쟁터에서도 결코 힘만이 다가 아님을 지혜의 여신 아테네를 통해 미뤄 짐작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실제 전쟁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전쟁 같지 않은 전쟁이 한창인 요즘이다. 그러나 단순히 자신이 속한 그룹의 명예나 실리를 위한 싸움을 하기보다는 우리가 ‘진정 무엇을 위해, 무엇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더불어 그 밑바탕이 될 수 있을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 또한 돈이나 외모, 권력 등의 거창한 이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아주 사소한 진심’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도 명심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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