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피아노 / 주홍
2022년 03월 16일(수) 19:30
주홍 치유예술가·샌드애니메이션 작가
아침에 일어나 화분에 물을 주고 봄꽃을 바라보고 천리향의 향기가 파고드는 숨을 느끼며 하늘을 바라본다. 봄비가 오려나 보다. 봄날 아침 음악을 들으며 식사를 하다가 SNS에 올라온 한 편의 동영상을 보았다.

2022년 3월5일로 찍힌 우크라이나 영상이다. 일상복의 한 여인이 먼지 쌓인 담요를 걷어내자, 흰 그랜드피아노가 나오고 피아노 건반을 툭툭 손으로 치며 먼지를 털어내고 건반을 미끄러지듯이 연주를 시작한다. 그녀는 폭격을 피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피아니스트는 폭격으로 파괴된 집에 들러 상황을 살핀 후 피아노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바로 연주를 했고, 누군가 스마트 폰으로 급하게 찍은 영상이다. 영상 속 집 내부는 물론이고 잿더미가 된 동네는 아직 불에 타고 있고, 오래된 아름다운 문들은 부서져 바닥에 나뒹굴고, 파괴된 방과 거실의 집기들과 아름다운 나무계단 위에 우수수 떨어진 유리 파편들…. 그 속에서 어떻게 이 피아노가 살아있었을까! 피아노가 살아서 소리를 내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이 짧은 동영상은 전쟁의 단면을 보여준다. 파괴된 일상! 사라진 평화! 이 연주 장면은 강력하게 세계시민들에게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당신들은 평화를 지킬 자신이 있는가? 우크라이나의 일상은 전쟁으로 이렇게 파괴됐다!’라고 피아니스트는 연주로 말한다. 전쟁의 일상을 배경으로 연주하고 있는 이 영상은 하루 만에 클릭 수 26만이 넘었다.

지난 6일 오후 2시, 광주 민주광장에는 전쟁을 반대하는 예술인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전쟁반대시민연대와 생명평화미술행동, 메이홀 작가들이 시민들과 함께한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한 예술행동이다. 3일 만에 30명 넘는 작가들이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한 작업을 해서 민주광장에 모이기로 한 것이다. 돈밖에 모르는 풍토에서 이 자발적인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서울에서 KTX를 타고 그 작품들을 직접 들고 송정역으로 그리고 문화전당역에 내려 광장에 도착한 작가들, 안산, 세종, 아산, 여수, 목포에서 운전을 하고 아침 일찍 출발해서 도착한 작가들에게 나는 물었다. “돈도 주지 않는데, 어려운 시절에 여기까지 참여하러 온 이유가 뭔가요?” “우크라이나 전쟁상황이 너무 안타까웠고 예술로 어디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광주 민주광장이니까 달려왔죠!”라고 했다. 작가들에게 광주 민주광장은 그만큼 성지 같은 곳이었다. 1980년 5월 전두환 군부 쿠데타에 저항해 횃불을 들었고, 끝까지 항전했던 바로 그곳에서 우리가 최초로 전쟁반대를 외친다는 것, 그 자체가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술가들과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모여 걸개그림들을 바닥에 펼치고 붓과 물감을 들었다. 전국에서 모인 30여명의 예술인들이 자신이 가장 잘 하는 방식으로 전쟁반대를 표현하며 예술행동을 했다. 그 표현 방식은 다양했다. 화가들은 걸개그림을 그렸고, 배우는 몸짓으로 표현했으며, 퍼포머는 만들어온 의상으로 발언하며 옛 전남도청 정문 앞에 서 있기도 했다. 시민들은 자기만의 피켓 등을 쓰거나 출력해서 들고 함께 참여했다.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전쟁 반대! 전쟁 스톱!”을 외치는 예술가들은 전위적이었다. 정치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예술로 할 수가 있구나! 이 예술가들은 발언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평생을 현장에서 작업해 온 현장미술의 대가들이 민주광장 하늘을 배경으로 펼치는 예술행동은 진짜 예술이었다. 광장에서 완성된 걸개그림들과 피켓들, 시위에 입었던 옷 등등을 날 것 그대로 메이홀에 디스플레이 했다. 그리고 멀리서 광주를 찾아온 작가들과 함께 메이홀에서 준비한 주먹밥과 광주 김치, 홍어삼합을 나눴다. 광주정신은 이렇게 예술과 자발적인 시민의 힘으로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기원하며 현재의 살아있는 정신이 됐다.

이 전시는 3월6일부터 4월30일까지 메이홀에서 ‘우크라이나에 평화를!-전쟁반대’라는 제목으로 열린다.

평화는 공기 같아서 평화로울 때는 잘 의식하지 못한다. 일상이 파괴됐을 때 평화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피아노를 치는 일상이 그토록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었음을 우크라이나의 피아니스트도 몰랐을 것이다.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와 우크라이나의 참혹한 전쟁을 우리는 보고 있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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