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꿈과 희망 / 이현
2022년 03월 17일(목) 19:37
이현 아동문학가
“뭐지?”

어두운 길을 걷다 보면 숨이 턱, 막힐 때가 있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자꾸만 누군가 따라 오는 것도 같아 안절부절, 어찌 할 수가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만났던 끔찍한 장면들이 수 없이 머릿속을 스치며 가슴이 쿵쿵, 다리 힘이 풀린다. 길가에 버려진 비닐봉지의 바스락거림, 지나가는 자전거 페달 소리, 어디선가 나타나 유유히 사라져 가는 길 고양이의 뒷모습을 보고서야 후유, 안심이 된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내 안에 심어 놓은 어둠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이다.

풍경, 노래, 눈빛, 표정….

우리의 일상 속에서 수 없이 보고, 듣고,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책 속 문장을 통해 떠오르는 풍경, 노오란 개나리꽃길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 노랫말과 함께 소환되는 그때 그 추억, 그 날의 눈빛과 표정…. 내 안에 심어 놓은 색깔과 모양과 이야기에 따라 회상된다. 어느 날인가 사르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기억도 있지만, 따스한 봄날이 되면 어김없이 싹을 틔우며 울라오는 여러 해 살이 풀처럼 자꾸만 되살아나는 기억도 있다. 원하지 않아도 별 수 없다. 지우려고 애 쓸수록 또 다른 형태의 씨앗으로 흩어져 아픔이 되고 상처가 된다.

“어머나, 세상에!”

얼마 전, 제주 올레길에서 만난 보랏빛 열매 백년초는 신비로움이었다.

숯처럼 까만 바위틈에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듯, 당당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선인장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바닷가 데크길을 따라 끝없이 모여 있는 선인장 군락은, 말 그대로 선인장의 자생 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는 국내 유일의 선인장 야생 군락이었다. 마을 곳곳, 골목길을 따라 늘어서 있는 집 울타리 돌담에도 가시 돋친 선인장을 심어 뱀이나 쥐들이 담 넘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했다는 지혜에도 고개가 끄덕였고, 바닷길 모래밭에 선인장이 자라게 된 연유도 재미있었다.

여러 가지 설 중에서도, 선인장의 원산지로 알려진 맥시코에서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제주까지 밀려와 바위틈에 기착한 것으로 보고 있음이 놀라웠다. 한 알의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 멀고도 먼 길을 험한 파도와 싸우며 건너 온 덕분에 천연기념물 429호로 자리하고 있음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생김새가 손바닥 같아 손바닥 선인장이라고도 하고, 백가지 효능이 있다하여 백년초로도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음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햇살도 고운 3월이다.

우린 또 날마다 어떤 씨앗을 뿌리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처럼, 크고 작은 일상을 통해 뿌리고 있는 우리의 씨앗들은 어떤 모양의 싹을 틔우며 어떤 이야기로 기억 될까. 무심코, 나도 모르게 뿌려 놓은 씨앗들이 누군가의 아픔이 되고 상처가 되는 건 아닐까. 내 안에 심어 놓은 소망의 씨앗들은 언제 쯤 싹을 틔우게 될까. 언제쯤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게 될까. 한 알의 씨앗에 마음을 담아 땅 속에 심으면 햇살과 바람과 비를 만나 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기다림도 필요할 것이다.

긍정, 따사로움, 위안, 웃음, 소망….

나의 마음에, 서로의 마음에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소망의 씨앗들만 심었으면 좋겠다. 길고 긴 여정을 견디어내며 아름다운 선인장 군락을 이룬 것처럼, 우리 사는 이 땅에도 희망과 웃음의 군락 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방방곡곡 긍정의 군락 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이 봄이 더욱더 따스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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