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의 광주땅 '최초' 이야기](43)종교시설

무등산 증심사 860년 철감선사 도윤 창건
북문안교회 1906년 건립…3·1운동 여파 예배당 헐려
북동성당 1930년 공소집 출발, 남동·원동성당 뒤이어
원불교 궁동교당 새벽 타종 2015년 추억 속으로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문학박사
2022년 03월 17일(목) 20:32
통계청 2015년 조사결과, 광주 146만1천127명 중 56만9천103명이 신도다. 개신교·천주교가 29만2천140·12만6천284명으로 73.5%이다. 불교는 13만9천30명으로 24.4%이며, 원불교 3천368명, 유교 2천676명, 천도교 1천971명, 대순진리교 1천657명, 대종교 67명 순이다.

2021년 11월 말 광주시 종교시설 2천266개소 중 기독교가 천주교 57개소를 합쳐 1천890개소다. 불교와 원불교는 256·12개소, 이슬람 5개소다. 기타 100개소 중 여호와증인 24개소, 대순진리회 15개소, 증산도 1개소다. 북구는 기독·천주교 651·14개소, 불교 66개소, 원불교 4개소 포함, 774개소로 가장 많다.

광주최초 불교 시설은 증심사다. 무등산 토끼등 서측 해발 230m, 운림동 56번지에 860년 철감선사 도윤이 창건한다. 1094년,1443년,1609년 재건했으나, 1951년 오백나한·사성전만 남고 불탄다. 1971년 대웅전, 1986년 비로전, 1989년 적묵·행원당이 복원된다.
1960년대 증심사 전경(오종태사진집,1995).

무등산 새인봉 북동측 해발 310m, 운림동 11번지에 위치한 약사사도 설립자와 연대가 엇비슷하다. 처음 인왕사였다가 1360년 3창 불사 때 약사암으로 개명한다. 무등산 천왕봉 북동쪽기슭 원효계곡, 금곡동 846번지 위치한 원효사는 신라말에 창사된 것으로 여겨진다.

옛 문헌에 기록된 주요 사찰명은 대황사, 백천사, 장원암, 성거사, 십신사가 있다. 금남로4가 51번지 송광사 포교당, 원각사는 1914년 선암사 장금봉이 설립한다. 당초 최씨 대지로 1927년 사사지(社寺地)가 된다. 1946·1951년 소촌동에서 정광중·고가 개교한다. 1978년 광주시 통계를 보니 사찰 67개소, 교직자수 165명, 신도 2만8천931명이다.
1900년대 북문안교회(양림교회100년사,2003).

광주최초 개신교 정식시설은 북문안교회다. 1906년 광주읍성 사창골(억만고), 충장로3가 24·26번지에 ‘ㄱ’자로 짓는다. 삼일운동 참여자가 많다고 터를 몰수당해 예배당을 헐어 1919년 남문 밖 금동 101번지(협화의원)로 옮긴다.

남문밖 금정(제일)교회는 1920년 북문 밖(중앙)교회, 1924년 양림교회로 분립한다. 양림교회는 1926년 290번지에 교회당을 신축하니 현 웃교회(기장)터다. 1954년 92-10번지에 중간(마당)교회(예장통합), 1971년 113-1번지에 아랫(계단)교회(에장합동)가 설립된다.

1896년 남장로교회 테이트, 레이놀즈, 해리슨, 전킨, 벨이 광주를 답사한다. 1898년 벨(Eugene Bell·裵裕祉1868-1925)목사와 오웬(吳基元1867-1909)의사는 목포에 도착한다. 1904년 프레스톤(변요한)과 같이 광주를 방문한다. 성탄절날 양림동 108-2번지(광주콘텐츠창업보육센터)에서 첫 예배를 올린다. 사직도서관 어귀에 선교기념비가 서 있다.

1915년 미국남장로회 선교부로 등록된 땅이 현재 양림동 지역만 해도 108번지 5.9㏊ 대지와 113번지 7.1㏊ 밭을 포함 42필지 약 28㏊에 달한다. 1908년 66·256번지에 숭일·수피아여학교를 연다. 251번지 1911년생 수피아홀은 현존,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건물이다.

2018년 삼도동 796번지 평동로변 평산신씨 세장비곁에 ‘광주지역 최초 설립 삼도교회’ 표석이 선다. 신광길을 따라 남쪽으로 350m에 이르자 316번지에 교회가 나온다. 1961년 세운 종탑 곁에 돌비 글이 들어온다.

“1897년 1월 5일 설립된 삼도교회입니다. 배유지 선교사의 어학선생인 이문오의 동촌 여막을 예배처를 1938년 옮겨왔다.”

동네사람 신부남·장정부(84)는 우산동 교회를 다니던 이문오가 1899년 골말 주막에 ‘바다(해)등교회’를 열었다고 한다. 토지이력서를 살피니 삼도동 784번지가 1933년 양림동 조선야소교장로회전남유치재단 소유가 된다. 1916년 당회록에 나온 이계수 장로집은 644번지다.

호신대 차종순은 2001·2003년 ‘송정제일·양림교회100년사’에서 1897년 ‘잉계교회’를 알린다. 우산동 1099번지 2㏊ 크기 잉계지(彦溪池) 언저리로 추정된다. 방죽 주위 대지는 동편 동·서작 84개와 남쪽 향약 18개다. 소유자 대다수가 김씨이며, 1211·1298번지는 동작 이명옥·선찬영 집터다. 남쪽 신촌리간 아리랑고개, 현 문화체육센터 남측에 주막이 위치했다.

송정제일교회는 2001년 100주년 기념비를 세운다. 비석에 ‘창립일 1901년 4월 1일, 개척자 유진벨 목사’가 보인다. 1979년 송정읍교회를 송정제일교회로 개칭한다. 1986년 현 위치인 송정리 648번지에 오기까지 신촌리 870·972번지, 송정리 656·709번지를 거친다.

광주최초 천주교 시설은 북동성당이다. 박재수 신부가 1930년 북동 33번지에 작은 강당과 6칸두줄박이 공소집을 건립한다. 1910년대 누문리 48·52번지로 문·심씨 밭이었다. 1934년 37평 목조성당, 이듬해 사제관을 짓는다. 1937년 대구교구에서 분립, 승격되고, 본당 성전을 착공 다음해 완공한다. 대지면적 4천730㎡, 연면적 366㎡ 건물의 설계자는 김수근이다.
1938년 광주본당 성전 낙성식(북동본당발자취70년사,2006).

평면은 가늘고 긴 사각형으로 정면에 종탑이 있다. 좌측면에 제의·고해실을 배치했다. 외벽은 고막이돌을 놓고, 붉은색 벽돌을 쌓았다. 종탑과 측면 창틀문에는 화강석으로 인방을 설치했다. 내부 벽과 천정은 흰색 회로 마감했다. 1987년 일부 증축, 1999년 시기념물 25호가 된다.

1948년 남동 성당, 1949년 원동 성당, 1950년 광천동 공소, 1957년 비아 공소, 1964년 계림·월산동 성당, 1965년 방림동, 1967년 임·신동 성당, 1968년 호남동 성당이 차례로 생긴다. 1969년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구성된다.

1954년 마(Martelli)신부는 중흥동 371번지 8.34㏊를 매입, 1956·1959년 살레지오중고를 설립한다. 1958년 지산동에 여중, 1961년 여고를 만든다. 1962년 쌍촌동에 대건신학대학이 문을 연다. 1987년 임암동 화방산 기슭에 카리따스 교육관이 설립된다.

광주최초 원불교시설은 궁동교당이다. 1947년 양림동 248번지 정산의행 자택에서 영광교구 도양교당 조일관 교무 출장법회로 시작한다. 1951년 호남동 432번지 교당(4칸목조)을 옮긴다. 이듬해 궁동으로 이전 광주지역의 모체교당으로서 자리 잡게 된다.
궁동원불교당(향토지리연구소,2022).

토지문서상 1959년 궁동 40번지 423평과 33번지 3.8평은 전북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 344-2번지에 주소를 둔 재단법인 원불교터가 된다. 1910년대 일본종교재단터였다. 1964년 중흥동 서광주교당, 1968년 학동 남광주교당, 1971년 계림동 동광주교당, 1975년 송정교당이 개원한다. 쌍촌동 1286번지에 2008년 광주원음방송국이 개국한다.

광주교당 관문 3층은 종루(鐘樓)다. 2015년 6월 12일 마지막 새벽종을 친다. 1957년부터 우주의 문을 여는 의미를 담아 매일 아침 5시 33번을 치고, 하루를 마감한다는 의미로 밤 10시 28번 타종해왔다. 시계가 흔치 않던 시절 시장상인, 학생, 고시생, 회사원들의 시계역할을 했단다.

대한민국은 부처님오신날과 성탄절이 공휴일이다. 헌법 20조 1·2항을 본다.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문학박사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문학박사
이 기사는 광주매일신문 홈페이지(kjdaily.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kjdaily.com/1647516726569841223
프린트 시간 : 2022년 08월 12일 01:5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