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매화꽃 / 배우식

2022년 03월 20일(일) 19:20

배우식

꽃 하나 필 때마다
그 소리 들리는지
고개를 높이 쳐들고
매애애(梅愛愛)
답하는 염소

어느새,
염소의 눈 속에도

매화꽃이
피어난다.
(시집 ‘이렇게 환한 날에’, 고요아침, 2021.)

[시의 눈]

‘매애애~’ 구릉의 흰 염소가 우릴 부릅니다. 가보니 매화꽃이 흐드러져 있군요. 소리 없이 피어나는 꽃인가 했더니, 꽃은 흰 염소로 치환되었네요. 광양 다압에 진군하는 매화 폭탄을 보던 것도 오래 됐지요. 운암산 길에 큰 홍매화가 있어 가끔 눈요기를 합니다만 무더기로 핀 장광을 보려면 아무래도 매화골을 가야겠지요. 한 송이 개화할 때마다 목청을 돋궈내는 염소는 꽃의 전령사입니다. 뉴스의 자막 옆에 작은 수화를 보여주듯, 염소의 눈에 나온 꽃밭이 화면을 누빕니다. 그건 사람들의 휘파람으로 옮겨가 천근 근심도 덜어내지요. 요즘 산기슭을 바라보는 우리의 큐는 어떤 전환을 바랄까요. 엄마 손에든 호떡을 움켜쥐려는 아이가 매화 가지처럼 눈부신 팔을 뻗습니다. 곧 강물로 헹궈질 재첩 알이 반짝이고, 햇살로 단장한 여름은 초록비를 뿌릴 것입니다. 그래, 굵은 열매의 날이 오겠지요. 매실주를 얼마큼 담글지 가계부 페이지가 벌써 넘겨지기도 합니다. 나, ‘매애애’ 소리 따라 도원경, 아니 살림 속으로 들어갑니다. 배우식 시인은 충남 천안에서 나, 중앙대 문창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2003년 ‘시문학’에 시,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조로 등단했고, 시집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2005), 시조집 ‘인삼반가사유상’(2014) 등을 냈습니다. 그는 우주만상을 투명한 날로 새기듯 생기발랄한 에피소드를 탁조해 내는 시의 디자이너입니다.<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