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순의 '문화터치']전통문화관의 ‘무등풍류뎐’ 3월 행사 마치고

2022년 03월 24일(목) 19:56

광주문화재단 문화공간본부장

얼마 전 날씨가 마치 겨울을 방불케할 정도로 추웠다. 이게 봄일까 싶을 정도로 차가웠다. 때맞춰 오미크론 확진자가 1만명을 훌쩍 넘겼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의 오미크론 확진을 기록하며 코로나19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추운 날씨로 감기환자까지 뒤섞여 병원은 인산인해다. 아무리 춥다고 한들 겨울일 리가 없다. 봄은 이미 우리들 곁에 있다. 아직 봄 같지 않은 봄이지만. 이를 두고 선인들은 춘래불사춘이라 했다. 봄은 왔건만 봄 같지 않은 봄, 그렇다고 겨울은 아닌 것이다. 이미 매화는 꽃망울을 터트려 그 고운 자태를 이 세상에 뽐내고 있고 목련, 산수유, 개나리도 꽃을 머금고 언제 터트릴지 초를 다투고 있다.

춘래불사춘의 분위기 속에서 봄맞이 판놀음이 펼쳐졌다. 광주문화재단 전통문화관이 3월20일 무등풍류뎐의 3월 행사로 경칩과 춘분을 위한 난장을 마련한 것이다. ‘봄 마중 가세’란 타이틀 아래 줄타기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김대균 선생과 그의 문하생들을 초대해 줄타기 판놀음을 펼쳤다. 경칩이 지나고 춘분을 하루 앞두고 펼쳐진 게 무색할 정도로 이날의 수은주는 사정없이 떨어져 있었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살짝 불안했었다. 일단은 비가 올 것같은 우중충한 날씨가 마음에 걸렸다.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언제 쏟아져도 이상할 것 없는 그런 분위기였다. 날씨예보를 믿기로 했다. 주중에 내내 비를 찔끔거렸지만 그날 만큼은 비가 없는 것으로 예보됐었다. 그럼에도 혹시 하는 불안감은 아예 떨쳐낼 수 없었다.

비가 조금씩 내릴 경우 다른 야외행사는 그냥 감행할 수 있지만 줄타기 판놀음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김대균 선생은 “땅이 굳건하지 않으면 줄을 감당해줄 기둥이 버틸 재간이 없다”며 비가 조금이라도 올라치면 행사는 무산된다고 했다. 제발 비가 오지 않기를 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비 못지 않게 낮은 온도가 문제였다. 더욱이 구름이 가득해 해가 비치지 않는 관계로 체감온도는 더욱 떨어졌으니 관람객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무등풍류뎐의 올 첫 야외행사다. 그런데 차가운 날씨로 인해 사람들이 없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공연진과 우리 직원들 사이에 팽배했다.

조선판스타 김산옥 선생의 맛깔진 진행으로 판놀음이 펼쳐졌다. 어디서 왔을까 싶게 관람객들이 모여들었다. 그 추운 날씨가 민망할 정도로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그로인해 줄타기 판놀음은 추위를 날려버릴 정도로 신명과 흥의 도가니였다. 초등학생 재인, 중학생 재인, 한예종 재인이 차례로 줄을 탔다. 단순히 줄을 타는 것만이 아니었다. 줄 아래 마당판에서 김대균 예능보유자와 어린 재인들의 끼 넘치는 재담이 흥미진진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줄타기 재간도 재간이지만 그들이 주거니 받거니 건네는 재담에 온통 정신을 빼앗겼다. 열 한살짜리 재인이 펼치는 줄타기는 귀여움, 그 자체였다. 재담도 귀여움으로 중무장되어 관람객들의 미소를 자아내게 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줄타기의 퀄리티가 높아졌다.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행해지는 공중제비를 비롯해서 일명 ‘똥꼬타기’, 무릎꿇고 줄타기 등 여러 가지 재주가 선보여졌다.

관람객들의 넋을 빼놓은 줄타기 판놀음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맬컴 글래드웰이 자신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발표한 ‘1만시간의 법칙’이 아닌가 한다. 어느 분야이든 위대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일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다. 김대균 예능보유자도 10대 시절부터 40년 넘게 줄타기를 해왔다. 그 시간이 던져준 저력에서 줄타기 판놀음의 신명이 자연스레 울궈나온 것이다. 스토리와 관계맺기가 곁들여지면 재미난 콘텐츠가 된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보였다. 전통이라고 해서 지루하고 재미없을 거란 생각은 진부한 것이다. 전통문화 콘텐츠가 오히려 신명나고 흥이 넘친다. 무등풍류뎐은 그걸 몸소 보여준 문화난장이었다. 전통문화를 소재로 어떻게 콘텐츠화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