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 박대우
2022년 03월 24일(목) 19:56
박대우 지역발전정책연구원장
양금신족(量衾伸足),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이불의 길이를 헤아려 다리를 뻗는다는 말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주어진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고 구체적으로는 상대방과 협상이나 대결이 불가피할 때 자신의 현실과 주변의 상황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결과까지도 예측하면서 결정해야 한다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특히 국가와 국가 간의 외교와 국방에 관한 결정과 관련해서는 양금신족과 같은 과정이 필수적이다.

지난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종식된 이후 경제성장을 중시하는 자유무역의 변화를 타고 미국의 영향력도 위축되었다. 유럽에서는 에너지 자원을 바탕으로 러시아가 목소리를 키웠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미국을 위협했다. 중동에서는 이란이 핵협정을 놓고 미국과 첨예하게 맞서고, 북한 역시 군사적 도발을 이어갔다. 반미전선은 확대되었지만 힘을 보태야 할 우방국들은 군비를 늘려달라는 미국의 요구에 호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경제적 이익 앞에 모래처럼 흩어졌던 서방의 결속력이 단번에 회복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힘없이 무너질 것이라 예상했던 우크라이나가 군사대국 러시아를 상대로 놀라운 전과를 이어가고 있다. 전쟁의 승패와는 관계없이 러시아는 이미 엄청난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고 예전의 국력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뒤따르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전후 복구과정에서 서방세계의 천문학적인 예산과 정책지원이 뒤따를 것이다. 코미디언 출신의 한계를 지적받았던 우크라이나의 젤린스키 대통령 역시 세계적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얻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장 많은 이득을 보게 된 국가는 당연히 미국이다. 그동안 러시아에 의존하던 유럽의 에너지 보급을 대체하면서 미국의 경제적 이익이 커지게 되었고,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군비경쟁으로 미국 방산기업들의 수익도 급증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직접적인 군사개입 없이 러시아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게 된 것도 중요하지만 더 큰 성과는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으로 연결되는 반미전선이 일시에 약화되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중국의 입지가 좁아졌다. 얼마 전까지 대만 해협을 두고 미국을 위협하던 패기를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 대한 정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사드(THAAD)배치로 시작된 한한령(限韓令)이 완화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사드 추가배치까지 주장하는 보수정권의 출범을 앞두고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중국에서 방영되면서 양국의 문화교류 재개를 기대하고 있지만 윤 당선인의 ‘사드 추가 배치’ 공약이 이런 흐름을 방해할 수 있는 불안요인이고 한국 엔터테인먼트 및 관광산업에 큰 손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의 기사는 이러한 기조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은 우리 정부가 수차례 요구했음에도 반응이 없던 북한과의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의 북핵 수석대표인 류사오밍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방한을 조율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해 협의하고 있다는 보도가 그것이다. 이처럼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급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과 서방의 강력한 개입을 보면서 군사력보다 중요한 것이 외교적 우군이라는 것을 절감한 중국으로서는 세계 경제력 10위, 군사력 6위 한국과의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는 중국과 북한의 연결고리가 취약해졌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MB) 발사와 풍계리 핵실험장 재건 등의 벼랑 끝 전술을 고집하고 있다. 행여 궁지에 몰린 러시아에 군사적인 지원까지 실행한다면 미국은 군사적 옵션에 머물지 않고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까지 선택할 확률이 높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서 가장 우선순위에 올려놓은 대외전략이 근본적인 원인제거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은 북한이 발을 뻗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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