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봄바람 / 인은주

2022년 03월 27일(일) 18:54

인은주

구순과 팔순 자매

평상에 걸터앉아

내 틀니 보았냐구, 사위가 죽었다구?

백발의 사발꽃다발

부스스스 떨군다

(시집 ‘우리의 관계는 오래 되었지만’, 시인동네, 2021.)


[시의 눈]

당나라 동방규(東方虯)가 왕소군(王昭君)의 슬픈 사연을 듣고 노래한 ‘소군원’(昭君怨)에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그러니까 봄이 봄 같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지금 오고 있는 봄이 그런 듯도 싶습니다. 왕소군 원망보다 더 징한, 사년 간 사람들을 쓰나미처럼 천만 명이나 감염시키는 코로나에, 뒤숭숭한 정치 후유증에, 그리고 울진의 큰 산불에, 우크라이나 폭격 등 불사춘 소식은 자고나는 우리를 우울하게만 합니다. 그래 더욱 봄은 와야겠지요. ‘구순과 팔순’의 두 자매의 말은 어쩜 이즈음 우리 세태를 풍자하는 듯도 합니다. 보니 상황불통이군요. 치매에 귀가 안 들리니, 지금 끼고 있는 ‘틀니’가 없어졌단 걱정에다, 펄펄 살아있는 ‘사위’까지도 죽었다고 단정하려 합니다. 하지만 당신 ‘불사춘’은 버리세요. 허! ‘춘래’만 생각하라고요? 자매는 ‘평상’에서 희미하지만 볕 바라기를 합니다. 둘은 ‘백발의 사발꽃다발’을 끄덕여 흔듭니다. 안 들리니 서로의 말을 들어 보려는데 봄바람을 맞지요. 이고 있는 백발의 사발꽃다발 사이 ‘부스스스’ 바람이 길을 내어 ‘춘래’를 전합니다. 안개마저 잔뜩 문 황사바람이지만 곧 벙글 꽃바람이겠지요. 인은주 시인은 충남 당진에서 나, 2013년 ‘시조시학’을 통해 등단했습니다. 이후 시집 ‘미안한 연애’를 펴냈습니다. 그는 삶의 편린과 남루들을 은유의 숲으로 감싸며 상투적이지 않은 정제의 시학을 다듬어내는 젊은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