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둘이 다 맞아 / 고윤자

2022년 04월 03일(일) 18:54

고윤자

봄 철새가 말했어요
은행잎은 연두색이고
단풍잎도
연두색이야

가을 철새가 말했어요
아냐
은행잎은 노란색이고
단풍잎은 빨강색이야

높은 산이 말했어요
빙그레 웃으며
둘이 다 맞아
내 봄옷과 가을옷은 다르잖아
(시집 ‘배짱도 좋다’, 아동문예, 2020.)


[시의 눈]

사람 둘이 모이면 무엇인가를 겨룹니다. 제 공을 세워 상대의 콧대를 낮추려고도 하지요. 봄이 입는 산옷은 연두색, 가을이 입는 언덕옷은 노랑색과 빨강색입니다. 철새들이라 그렇게 볼 수밖에요. 늙은 산은 옷 속에 든 자길 잘 알고 있습니다. 맨살로 뒹구는 깨복쟁이 형제의 한 가난한 집에 어떤 아저씨가 방문했습니다. 헌데, 아저씨가 간 뒤로 대판 싸움이 나고 말았군요. 그럴만한 호기심을 일으킬 권총과 인형을 선물로 놓고 갔으니까요. 두 놈이 하도 싸우길래 엄마가 말했어요. 어쩜 둘 다 욕심이 똑 같냐. 서로 번갈아 가지고 놀면 돼. 두 장난감도 서운치 않게 말이야. 산이 타이르듯 엄마의 판결에 아이들은 잠잠해 집니다. 왜 그걸 몰랐을까. 봄산과 가을산도 그저 옷만 바꿔 입었구나. 깨복쟁이 형제는 서로 맨살을 간지럽히며 그 전처럼 히히, 웃습니다. 뭐 산은 그 자리 산이지요. 고윤자 시인은 전북 군산에서 나 2000년 ‘문예운동’에 시와 2017년 ‘아동문예’ 동시가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그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 친구들의 온정을 담아내는 따뜻한 고봉 밥그릇 같은 동시를 쓰고 있습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