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양건설 마형렬 회장 회고록(16)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 |
| 2022년 04월 05일(화) 1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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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원고는 마형렬 남양건설 회장님의 회고록 '막히면 뚫고, 닫히면 열고'를 인용한 것으로, 내용 중 등장하는 이름과 장소 등을 일부 편집했음을 알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가 뭘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시집간 딸자식이 곤궁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그 중에 하나일 것이다.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길렀던 딸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나는 그런 모습을 장인 어른께 보여드리고 말았으니 큰 죄를 지은 셈이다. 영전에 머리 숙여 사죄를 드린다.
군에서 제대해 공사판을 전전하던 나는 철도청 임시직원으로 근무하면서 결혼을 했다. 규수는 같은 강진군 대구면 출신의 김해김씨 집안의 딸이었다. 당시 처가는 강진에서 벼락부자집으로 불렸는데 양어머니의 친정마을이라 속내를 잘 알았다. 10월 13일 제대하여 겨울에 선을 보고 음력 정월에 결혼했다.
당시 내게는 젊은이로서의 기백 말고는 내놓을 것이 별로 없었다. 장인 어르신을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어 딸을 주시기로 하셨다. 그런데 댕기풀이가 심해 다리에 금이 가 절뚝거리며 결혼식에 참석했으니 참으로 낭패였다. 그 때의 일로 지금도 한쪽 다리가 가늘다.
우리는 송정리역 부근에 신방을 차렸다. 그렇다고 결혼과 동시에 함께 산 것은 아니고 집안의 가풍을 익혀야 한다는 명분으로 서너달 동안은 따로 지낸 뒤였다. 남 보기 좋게 철도청 직원이지 하는 일은 표를 끊지 않은 사람을 색출하는 거였다. 당시에 세상살이가 힘든데다 철도역의 시설도 허술해 무임승차하는 사람이 많았다. 또 표가 없이 기차를 탔다가 역무원이 표를 검사하면 뛰어내리다 사고를 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임시직이다 보니 월급도 변변치 않아 사는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남의 집 귀한 딸을 데려가 단칸방에 살리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움도 컸다. 그런데 그런 단칸방에 장인 어르신이 쌀 한 가마니를 가지고 나타나신 것이 아닌가. 딸이 어떻게 지내는가 보러 오신 것이다. 워낙 대범하신 분이라 딸 앞에 눈물을 보이시지는 않았지만 돌아서서 우셨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나 또한 아이들을 키워 출가시켜보니 장인 어르신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광주시에서 임시직원을 뽑는데 1등부터 3등까지는 정식 직원을 시켜준다고 해 송정역원을 그만두고 응시했다. 2등으로 합격했는데 1등만 정식직원으로 채용하고 2등인 나는 산수동 수해복구 밀가루 취로사업 현장감독으로 보냈다. 당시 산수동은 대부분 논밭이었다.
그때 나에게는 오래된 시계와 마누라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무명베 1필, 모시 1필, 마포 1필이 있었는데 돈이 될 것으로 다 팔아도 살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 부모님은 "형렬이는 내버려두어야 잘 산다"고 말한 봉사사주쟁이 말을 믿고 본가나 양가에서도 나를 돌봐주지 않았다. 그러나 처가에서는 고생하는 딸을 생각해 가끔 도움을 주었다. 오죽했으면 처남 김광호가 자취하려고 쌀을 두서 말 가져왔다가 우리 집에 주고 갔겠는가. 돌아가신 처남도, 살아있는 처남도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날 이후 아내에게 마음고생은 시키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가난했기에 몸 고생은 시킬 수 밖에 없지만 마음 고생은 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사업을 한답시고 가정사와 아이들 문제는 모두 아내에게 맡겨버렸기에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가가 1년의 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 뒤 아내와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글을 본 적이 있지만 나 또한 가정을 잘 이끌어준 아내와 탈 없이 자라준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오늘의 남양이 있도록 내조해준 아내에게 절반의 공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