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무임승차 / 임채성

2022년 04월 10일(일) 19:41

임채성

앞으로만 내달려도
뒤로 자꾸 밀리는 길

내려야 할 종착지가 어딘지도 모르는채
졸다가 놓친 풍경들 땅거미에 묻혀간다

무얼 해도 적자 같은 지난날 돌아보면
티켓 없는 이 하루가 우수리는 아닐는지

잡아도 잡히지 않는
짧은 하루 가고 있다
(시집 ‘야생의 족보’ 시인동네, 2022.)

[시의 눈]

의도한 걸 잡지 못한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휑한 빈 손을 주머니에 찌르며 애설 없어 ‘놓친 순간이 아름답다’는 허랑 말이나 하지요. 자기를 합리화할 법한 그 말. 아등바등 살아가지만 지나고 보면 다 헛되지요. 나도 ‘적자’만 보며 내달려온 생이었군요. 내 못다 한 공부하랴, 자식 등록금 걱정하랴, 결혼 시키랴, 집 장만해 주랴 이리 뛰다 보니 맨 뒤로 쳐진 꼴입니다. 사람들 틈에, 일 무덤에, 밀리다 묻히다, 아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버렸네요. 이제 다음 역에서 환승이라도 하듯 위장해야 합니다. 퇴근하는 전철 안이 후끈합니다. 고된 눈을 잠깐 붙이려다 뜻밖의 불빛에 놀라지요. 저기요! 일어서 허둥댑니다. 사람들이 회색 눈으로 쳐다봅니다. 이런, 신도림역을 놓쳤군요. 야단났습니다. 눈물 흘리듯 아내의 복지기 엎은 이불 속 밥이 눈앞을 획 스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솔로몬의 설법을 듣듯 이마가 부풀어 오릅니다. 하루살이들처럼 빙빙 비문증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아니란 듯 엉덩짝을 퍽 앉힙니다. 하루의 ‘우수리’가 이런 시간인가요? 그러니까 이 한 정거장은 ‘무임’이겠지요? 임채성 시인은 경남 남해에서 나,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세랭게티를 꿈꾸며’(2011), ‘왼바라기’(2018)가 있습니다. 그는 탈진된 현실에 주목하고 이를 사물화하는 무의식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젊은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