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서재에서 / 신인호

2022년 04월 17일(일) 19:55

신인호

책의 바다에 빠져
지금 표류하다가
끝없이 몰아오는
글자의 물결에
부대끼다가

문득 다가오는 수평선
푸른 물이 보인다
격랑의 이랑으로
흘러오는 눈부신 빛

새 뭍으로 향하는
내 안의 해일이었다
(시집 ‘사유의 우물’ 미네르바, 2021.)

[시의 눈]

요즘은 책의 마력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하면 원시인 취급을 합니다. 인터넷 게임이나 주식에 빠져 제 재산에 구렁이 구멍이 나도 모를 만큼, 책은 디지털 세상에 다 자릴 내주고 말았군요. 난 한 때 호롱불 앞에 책을 읽다가 불을 낼 뻔도 했지요. 왜 있잖아요. 어머니는 석유 아끼려 일찍 자라는 데도, ‘조금만요’ 허가를 받아 밤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깜박 책을 좀 태웠어요. 초가집 골방에 참 위험천만한 일이었지요. 먼 하교 길, 한손에 책을 읽으며 걷다가 가로수에 머리를 받치거나, 웅덩이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표류’하듯 읽었지요. 시를 보니 그건 ‘수평선 푸른 물’이 그리워서였군요. 유진 오니일의 ‘지평선 넘어’가 생각납니다. 창 앞에 바라보이는 너머의 세계란, 시가 마무리한바 “새 뭍”의 세상이었고, 그건 한때 ‘내 안의 해일’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오늘 서재에서 소로우의 ‘월든’을 읽으며 호수의 저녁을 상상합니다. 제발 이 순간 깨어나지 말았으면 하고요. 뭐 이덕무의 ‘간서치(看書痴)’ 쯤 일까요? 신인호 시인은 경기 양주에서 나 1970년 ‘교육자료’ 문원 추천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수평선을 태우는 해’(2009)를 냈고, 풋풋한 시상에 다가가는 초록 감성으로 이웃과 자연, 계절의 톱에 삶의 온기를 이어주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