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양건설 마형렬 회장 회고록(17) 아내의 손이 따뜻할 때 |
| 2022년 04월 19일(화) 14: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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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원고는 마형렬 남양건설 회장님의 회고록 '막히면 뚫고, 닫히면 열고'를 인용한 것으로, 내용 중 등장하는 이름과 장소 등을 일부 편집했음을 알립니다-
5~6년 전 일본에서 '당신의 손이 따뜻할 때'란 수기가 많은 사람들을 울린 적이 있다. 이 책은 전후세대 일본 최고의 비평가 에토준이 41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가 암 진단을 받고 죽기까지 1년 동안의 이야기를 기록한 수기다. 그들에게는 자식도 없었지만 "우리는 단지 함께 있었다.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소중했다"고 말한다. 표제인 '당신의 손이 따뜻할 때'는 숨을 막 거든 아내의 손에서 반지를 빼면서 "체온이 남아 있는 반지를 통해 당신을 느끼겠다."는 다짐이었으리라.
심장병을 앓았던 에토 준은 아내의 장례식이 치러질 무렵 폐뇨증으로 사경을 헤맸다. 그러나 아내 혼자 내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하루 두서 장씩의 원고를 썼고 이 글이 '문예춘추'에 실렸을 때 수많은 일본인들을 울렸다. 그는 이 글이 발표된 지 얼마되지 않아 자택 욕조에서 자살했다.
에토 준의 수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그가 아내를 따라 자살했다는 애잔함 때문이 아니다. 어떤 사람의 지적처럼 부부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진정성, 일상의 위대함을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로 그는 평범한 삶 속에서 인생의 큰 가치를 깨달았던 것이다.
우리나라 유명한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의 '부부의 정' 이란 글에도 이런 말이 있다.
'아무런 혈연도 없으면서 혈연의 창조자가 되는 부부, 세상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나 가장 예사로운 사람으로 여기고, 때로는 가장 시들하게 생각하면서도 가장 미더운 사람, 가장 믿고 의지할 사람으로 생각하는 인생의 총본산'이라고.
내가 대단한 애처가나 되는 것처럼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부끄럽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시대의 많은 아내들이 고생을 많이 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 아내도 참으로 고생이 많았다. 스물세 살에 시집와 남과 달리 친부모와 양부모를 모셔야 했기에 마음 고생이 컸다. 내가 철도청 임시 직원과 월급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건설회사의 말단직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 셋방살이를 전전했던 아내에게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모른다.
특히 신혼 초 송정리역 부근에 살면서 새각시에게 막걸리 심부름을 시켰던 일, 월산초등학교 옆 단칸방에 살 때 아내가 첫 아이를 가졌으나 현장에서 생활하느라 제대로 뒷바라지를 못한 일이 가슴 아프다. 임신한 아내를 두고도 몇 달씩 집에도 못 들어가면서 일했는데 동양기업 정사장이 나를 쫓아냈으니 그에 대한 원망이 클 수 밖에.
당시 월급이라야 한 달에 쌀 한 말 주는 것이 고작인데 그 일마저 못하게 되었으니 아내의 상심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내색은 커녕 나를 위로하는 것이 아닌가. 남자가 그만한 일로 상심하면 앞으로 무슨 큰일을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실로 큰 위로를 받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또 남양건설을 인수해 오늘이 있기까지 내가 모르는 수고도 많았을 것이지만 신혼 초 고생했던 이야기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혼하는 아이들에게 꼭 이 말만은 당부한다. 아내는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가려주고 남편은 아내의 부족한 곳으로 메워주면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살아가라는. 인간은 누구나 부족한 점이 있기에 부부가 이를 잘 맞춰가면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