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입하 / 김임순

2022년 04월 24일(일) 19:22

김임순

왜애앵, 한동안 잊고 산 그놈이다
곡우 지나 선언하고 들어서는 또 한 계절
삶의 결 꿈틀대는 신록 슬슬 끓을 채비인가

농가월령 바빠진 농부의 일손처럼
뻐꾸기 우는 동안 보리밭섶 오디 익고
오뉴월 군불 지피는 햇살 덩이 스위치 온
(시집 ‘첼로를 품다’ 책만드는집, 2021)

[시의 눈]

덕산 마을 원잣등을 넘으면 우리집 긴 논배미가 보입니다. 지금은 사료공장이 들어섰지만 한때 아버지가 출근하시던 논이었지요. ‘입하’가 지나면 길섶엔 칠레향, 아카시향이 펼쳐졌어요. 어제 밤엔 그 논이 꿈에 보이더라니까요. 아버지들은 품앗이 두레질로 물을 넉넉히 대고 곧 모내기를 대비했지요. 5월 중순 여름이 시작됩니다. ‘왜애앵’ 한동안 잊었던 모기가 몰려오는 신호도 들립니다. 참 엊그제가 곡우였네요. 비가 온다는데 전국엔 왠 건조주의보가 몇 달째 발령 중입니다. 그러니 올 여름은 뜨거운 가마솥의 한철일 듯합니다. 신록은 야청으로 팥죽처럼 끓어 넘쳐 더 무성해지겠지요. 내 사는 운암산 자락엔 뻐꾸기가 자주 웁니다. 그가 울 땐 보리누름의 절골 밭둑에 뽕나무의 ‘오디’도 까맣게 보입니다. 칠팔월도 아닌 오뉴월이지만 ‘군불’이라도 지피듯 작열하는 태양이 예고됩니다. 그 열탕은 여름내 멈추지 않겠지요. 코로나 세상 팍팍하지만, 모기떼와 함께 ‘스위치 온’ 된 더위를 또 나야 겠습니다. 참, 오랜만에 바다 물놀이도 갈 요량으로 돈을 모으고도 있지요. 김임순 시인은 경남 창녕에서 나, 2013년 ‘부산시조’, ‘시와소금’, 그리고 공무원문예대전에 수상하며 등단했습니다. 시조집 ‘경전에 이르는 길’(2015), ‘비어 있어도’(2018) 등을 낸 그는 체험의 검증을 통해 궁리한 바를 건강하게 보여주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