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오월 / 김석규

2022년 05월 01일(일) 19:42

김석규

만 냥을 뿌리고도 모자라
빚을 내러 가는 날
꿀벌이 던지고 가는 알사탕 하나 받아먹고

막힌 코 다 비뚤어지도록 재채기나 해댈까
꽃그늘 하늘하늘
늘어지게 낮잠이나 잘까
(시집 ‘홀아비꽃대’ 태산, 2015)

[시의 눈]

오월은 건달이 즐길만한 철입니다. 봄바람이 사람을 근들거리게도 합니다. 이 오입하려는 멋쟁이 말고 처녀들 또한 덩달아 꽃바람을 타지요. 한 사내가 대취해 고갤 넘습니다. 입도선매한 돈을 재끼 판에 다 잃고 홧김에 마신 독주가 깨기도 전에 제 객기를 더 마셔 백구두마저 칠이 벗겨졌군요. 그는 흰 양복저고리를 어깨에 걸고 오월 유채 밭을 지나갑니다. 멍칫재에 마악 당도했네요. ‘만 냥을 뿌리고도 모자라’ 또 ‘빚을 내러 가는’ 고향 길입니다. 그는 냅다 오줌을 깔깁니다. 세상 일 다 버리고 암자라도 들어갈까. 그는 ‘이번만은’ 하고 화투 끝을 재듯 누런 손톱을 이빨처럼 드러냅니다. 코가 ‘비뚤어지도록’ 시원한 ‘재채기’에 헛기침을 겸한 능사도 짐짓 하려 합니다. 하지만 엊저녁 털복숭이 놈의 손아귀로 간 돈다발이 그만 앞을 가립니다. 그는 환장해 떨지요. 에라 낮잠이나 자고 가자. 그는 보리밭 속에 들어가 벌렁 몸을 눕힙니다. 우드득 보리모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 지 오랩니다. 어머니는 악을악을 쓰며, ‘이눔아 정신 차려라’ 동네방네가 당신 세상인양 어야태야 울겠지요. 아, 이런 60년대식 오월이 그리워지다니 나 건달일까요. 김석규 시인은 경남 함양에서 나, 196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과 1967년 ‘현대문학’ 시 천료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파수병’(1967), ‘초혼집’(1990), ‘고장난 희망’(1995) 등이 있습니다. 그는 세상 삶의 애환에 원초적이고도 육감적인 생명성을 불어넣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