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마당 / 박방희

2022년 05월 08일(일) 19:49

박방희

발바닥과 발바닥이 마당에 모였다네
수천수만의 빠댐이 마당이 되었다네
다섯 살 손자 아이가 맨발로 놀고 있네

평평한 마당이 환하게 웃고 있네
마당이 된 할애비와 아비의 발바닥이
비로소 주름 펴면서 넓적하니 웃고 있네
(시조집 ‘꽃에 집중하다’ 고요아침, 2016)

[시의 눈]

금가루가 내린 듯한 햇살 마당에 들어섭니다. 이 마당은 새벽부터 늦게까지 농사를 채비하거나 갈무리하던 오랜 터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들이 지혜와 힘을 도모하는 곳이었지요. 소나 닭을 치고 도리깨질로 곡식을 단도리하며 내 등록금을 준비하던 약속의 땅이기도 했구만요. 오늘 마당엔 옛 할애비의 발바닥이 ‘넓적하니’ 웃습니다. 마침 아비와 엄마 손을 잡고 온 손자가 덩달아 나비라도 잡을 듯 마당을 뛰어갑니다. 마당의 어른들은 모처럼 주름을 펴고 손자의 나비가 되고 싶어 합니다. ‘날 잡아봐라 요노옴!’ 하, 그의 웃음은 벌써 감나무 잎까지 날아가 초록으로 칠해집니다. 코로나19 떠난 산 너머를 보며 아비들은 휴식을 마당에다 앉힙니다. 사노라면 이런 재회도 있지요. 한때 퇴비를 삭히고 푸나무를 말리던 마당은, 이제 장작불에 얹는 삼겹살 파티의 멍석으로 바뀝니다. 마당이 된 할애비의 맨발바닥도 고기 맛을 보고 싶습니다. ‘고시레!’ 순간 그는 상추가 돼 활짝 손주 입으로 들어갑니다. 박방희 시인은 경북 상주에서 나, 1987년 ‘실천문학’에 시, 2001년 ‘아동문예’에 동시, 2009년 ‘유심’에 시조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불빛 하나’(1987), 동시집 ‘머릿속에 사는 생쥐’(2010), 시조집 ‘너무 큰 의자’(2012) 등이 있습니다. 그는 시·시조·동시·동화 등에 활동하는 엔터테인먼트로 전천후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