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 잘못 끼운 '5·18보상법'](2)40년 넘게 심리적 재활 지원 無…트라우마 진행형 ‘빨갱이 전과자’ 오명…국가폭력이 가정도 파괴 정신적 피해자, 우울증·대인기피증 등 일상생활 불가 가족까지 질병처럼 번져…죄책감 속 근본 치료 요원 황일봉 “최소한 직계 존·비속 정신적 피해 배상해야” 안재영 기자

2022년 05월 10일(화) 20:18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앞두고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은 학생들이 묘역을 둘러보며 5월 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김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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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A씨의 불행은 1980년 5월 국가가 무고한 시민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시작됐다. 당해 5월19일 광주 계림동 광주고등학교 부근에서 원고는 장갑차에서 발사된 총탄(3발)을 맞고 복부·대퇴부·오른쪽 손목에 관통상을 입었다. 다행히 5회에 걸친 대수술을 받고 목숨은 건졌지만 수술 과정에서 장기를 1m이상 도려낸 탓에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리게 됐다. 이후 A씨는 고통을 겪을 때마다 당시의 기억을 절로 떠올리며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그러면서 하루가 멀다 할 정도로 악몽을 꾸며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앓게 돼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져 학업마저 포기해야만 했다. 이 탓에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A씨는 가족들에게 부담감을 안겨줬다는 죄책감 속에서 트라우마를 치유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원고 A씨의 불행은 마치 질병처럼 가족에게 전염됐다. 자식의 심신에 새겨진 상처와 이상행동을 바라 볼 수밖에 없던 부모는 지속적인 정신적 충격 끝에 정서 불안마저 겪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위종양이 발병해 병마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날이 갈수록 기울어가는 가정과 피폐해져 가는 A씨를 보살피던 아내의 마음에도 상처가 번졌지만 이를 추스를 순 없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경제활동을 도맡다 보니 자신을 챙기는 것은 뒷전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이 탓에 그녀는 지금도 곪고 있는 심신을 붙잡으며 가정을 위해 분골쇄신하고 있다. 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주변인들로부터 ‘빨갱이 전과자’라는 오명에 시달리며 ‘연좌제’를 겪은 자녀들이 입은 상처는 어머니의 피와 땀으로도 치유되지 못했다. 또 ‘유전’처럼 정서불안 증세가 나타나 이들 가정이 입은 상처는 무엇으로도 치유되지 못한 채 하루하루 불어가고 있다. (※2021년 10월 원고 A씨 민사소송소장-5·18 정신적 피해 배상 청구 소 발췌)

이렇듯 1980년 5월은 당시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도 정신적 피해를 안겨줬다.

비록 ‘5·18민주유공자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약칭 5·18 유공자법)’ 제4장에 따라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심리적 재활에 관한 조례와 국가폭력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41년이나 지나서야(2021년) 신설·통과됐다.

또 광주 서구 치평동에 설립된 광주트라우마 센터도 피해자와 가족들의 심리적 안정과 치료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회복을 도왔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일시적인 치료로 상처를 잠시나마 덮을 순 있었지만 폭력을 주도한 이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 트라우마의 근본적인 ‘원인’이 뿌리뽑히기란 요원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5·18 보상법에 따라 국가가 ‘형식적인 보상금’만 지급하면서 피해자들의 현실은 무엇 하나 개선되지 않아 울분과 상처는 점점 더 곪아갔다.

이 탓에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40여년 동안 실질적인 지원 없이 국가폭력에서 비롯된 상처와 정신적 피해를 그저 감내해야만 했다.

그러다 2021년 헌법재판소가 내린 위헌 결정에 따라 정신적 피해 배상 소송이 가능해짐에 따라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당해 5월27일 이후부터 개인적·부분적 단체소송을 제기하며 국가의 불법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침해당한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해 나섰다.

그러나 지난해 판례에 당사자 중심의 위자료는 반영됐지만 가족에 대한 배상금은 포함되지 않아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를 비롯한 오월 단체들은 직계 존·비속과 배우자들에 대한 정신적 피해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황일봉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장은 “5·18민주유공자 본인의 인권침해와 더불어 온 가족들은 연좌제 적용으로 인해 심각한 수준의 인권 침해를 받아왔다”며 “이는 국가로부터 받은 명백한 2차 피해임에도 불구, 국가는 이같은 사실을 정신적 손해배상에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국가와 사법부가 올바른 결단을 내려 42년간 불행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한 부모와 배우자, 유공자 본인들의 위자료가 최종적으로 마무리되면서 화해하는 기회가 되길 간곡히 바란다”며 “가족들의 피해는 유공자 당사자의 트라우마로 인해 가중됐고 국가의 통제 등으로 가정의 불행과 파탄이 10년 이상 지속됐으므로 국가는 최소한 피해자의 직계 존·비속이 입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을 반드시 반영해 달라”고 호소했다.

/안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