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현관 / 이 광

2022년 05월 15일(일) 19:49

이 광

문밖엔
늘 헤쳐 온 파도가 넘실댄다

바다도 물도 아닌
여기는 작은 선창

그물질
지친 몸 부릴
배를 댄다

집이다
(시조집 ‘바람이 사람 같다’ 책만드는집, 2018)

[시의 눈]

내 직장은 예서 좀 멀지요. 이리 말하면, 번듯한 사무실에 컴퓨터와 책상이 버티고 있는 직장을 생각할 거예요. 사실은 저수지 건너 산밭 한쪽 컨테이너 안이랍니다. 뿌릴 종자와 비료, 농기구를 쌓아두고 간단한 먹거리도 있지요. 여름 되기 전 잡초도 잡아야 쓰것고 이른 북감자도 심을 작정이랍니다. 내 책상이란 어머니가 쓰던 밭입니다. 뭐 나도 한때는 결재서류를 3단으로 쌓은 파일함에, 응접 소파까지 갖춘 사무실이 있었지요. 직원들의 서류를 훑으며 어깨에 힘도 주었다니까요. 그땐 민원을 해결하려 이리저리 뛰던 때가 많았지요. 늘 파김치가 돼 술냄새를 쏘이던 이 ‘현관’이었네요. ‘너는 항상 그리도 바쁘냐?’ 어머니 계실 때 듣던 핀잔이었지요. 내 월급 구덕엔 잔챙이 몇 마리뿐, 큰 고기 들고 의기양양 그 부두에 배를 댄 적 없었네요. 이제 집입니다. 괭이질로 부르튼 손이 벨을 누릅니다. 익숙한 찌개 냄새가 나는군요. “여보, 약 어딨어?” 허, 이 사람 현관문도 닫지 않고 또 맨소랜담부터 찾네요. 이광 시인은 부산에서 나,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너다’(2011), ‘시장 사람들’(2019)을 펴냈습니다. 그는 리얼리즘에 입각해 겉치레 수사를 벗겨낸 그 현실의 맨몸 시를 쓰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