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고창 운곡습지 생태길 ‘람사르습지’에서 생태적 감수성을 키우다

2022년 05월 17일(화) 20:10

산봉우리와 산비탈을 장식한 나무들이 운곡저수지에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놓았다. 산과 나무들이 저수지에 내려놓은 반영이 운곡저수지의 아침을 아름답게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기후위기, 생태위기에 직면해 있다.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인재라 아니할 수 없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성장지상주의가 지구로 하여금 더 이상 버티기 힘든 한계치까지 오도록 만든 셈이다.

세계 각국은 뒤늦게나마 이러한 기후위기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파리협약을 통해 산업화 이전의 지구 평균온도 대비 2% 이상 상승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협약을 하고,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에너지전환을 이루자는 선언도 했다.

생태계를 보존하려는 노력도 다각도로 이뤄지고 있다. ‘람사르협약’도 그중 하나다. 람사르협약은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는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체결된 국제협약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24개 습지가 람사르협약에 따른 습지로 지정되었다.

운곡습지 생태길은 운곡저수지 호반을 따라 운곡습지 생태공원으로 이어진다.

오늘은 람사르습지 중 하나인 고창 운곡습지를 찾아간다. 운곡습지탐방안내소에 도착하니 ‘고창 운곡람사르습지 자연생태공원’이라 쓰인 아취형 안내판이 맞이한다. 길은 운곡저수지 호반을 따라 운곡습지 생태공원으로 이어진다. 짙푸른 소나무 잎과 연두색 활엽수 신록이 아침햇살에 눈부시게 빛난다. 건너편 산봉우리와 산비탈을 장식한 나무들이 저수지 위에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놓았다. 산과 나무들이 저수지에 내려놓은 반영이 운곡저수지의 아침을 아름답게 한다.

운곡저수지가 만들어지기 전 이곳은 오베이골이라 불렸다. 골짜기가 다섯 방향으로 흩어진다고 해서 오방골이라고도 했다. 오베이골에 한빛원자력발전소의 냉각수 용도로 쓰기 위해 1983년 운곡댐이 만들어지면서 골짜기에 있던 마을과 농경지가 수몰됐다. 마을사람들은 고향을 떠났고, 원자력발전소 측은 냉각수의 수질관리를 위해 운곡저수지 주변의 접근을 제한시켰다. 사람들의 통행이 없어지자 이 지역에 습지가 형성됐다.

운곡습지 생태공원에 있는 편백나무 숲으로 이뤄진 생태숲길. 생태놀이터는 물론 그늘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평상과 의자, 정자가 곳곳에 마련돼 있다.

안덕제에 도착했다. 안덕제는 운곡람사르습지의 일부로 크고 작은 둠벙이 주변 생태연못으로 흘러 습지생태 자원의 중간 서식처 역할을 한다. 안덕제에는 가시연 복원지가 있어 여름날 둥근 쟁반 잎 사이로 우아하게 피는 가시연꽃을 볼 수 있다.

운곡저수지를 바라보며 걷는데 여러 종류의 새들이 감미로운 음악을 들려준다. 날씨가 따스해지고 나무의 색깔도 푸르러지니 새들의 목소리도 한층 맑고 경쾌해졌다. 호숫가에서 백로 한 마리가 우아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데, 그 모습이 숲속에서 연주하는 새들을 지휘하는 것 같다.

운곡람사르습지홍보관 위쪽에 있는 세계최대의 고인돌.

운곡저수지가 끝나는 지점에 운곡람사르습지홍보관이 있다. 운곡습지탐방안내소에서부터 이곳 운곡람사르습지홍보관 앞까지 친환경 탐방열차가 3.4㎞ 호반 산책로를 따라 운행된다. 운곡람사르습지홍보관을 지나 세계최대의 고인돌을 찾는다. 자그마치 길이 7m, 무게 300t에 이른다. 이 고인돌 위쪽에도 거대한 고인돌 한 기가 더 있다.

운곡람사르습지홍보관 주변에는 운곡습지생태공원이 조성돼 있다. 생태공원은 운곡습지를 찾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공원이다. 목재로 만든 2층 전망대에 오르니 생태공원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생태둠벙에는 여러 수생식물이 자라고 있는데, 봄철이라 보라색 붓꽃이 유채꽃과 어울려 있다.

운곡습지 생태공원에 있는 ‘소망의 종’

생태둠벙에는 여러 수생식물이 자라고 있는데, 봄철이라 보라색 붓꽃이 유채꽃과 어울려 있다.

편백나무 숲으로 이뤄진 생태숲길을 걸어보니 피톤치드가 온몸을 감싸줘 기분이 상쾌해진다. 생태공원에는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생태놀이터는 물론 그늘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평상과 의자, 정자가 곳곳에 마련돼 있다. 지나는 사람들은 소망이 이뤄지기를 기원하며 ‘소망의 종’을 친다.

소망의 종을 지나면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의 오솔길이 고즈넉하게 이어진다. 길을 천천히 걷고 있으면 연두색으로 채색한 숲은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중간에 조류관찰대도 있어 운곡저수지에서 생활하는 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

운곡저수지 상류 골짜기로 접어들면서 운곡습지와 만난다.

운곡습지 생태탐방로는 데크형 다리를 통해 습지 위로 통행한다.

생태탐방로는 데크형 다리를 통하여 습지 위로 통행한다. 습지에는 버드나무와 풀, 이끼 등 물기에 강한 식물들이 푸른빛을 띠고 있다. 이곳 운곡습지는 운곡저수지가 생기기 전까지는 골짜기를 개간해 만든 계단식 논이 있었다. 계단식 논은 1983년 운곡저수지 담수가 시작된 이래 30년 넘게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폐경지로 남았다. 오랜 세월 묵힌 논은 자연적으로 산지형 저층습지의 습지원형으로 돌아왔다. 논으로 개발되기 전의 자연으로 복원된 것이다.

운곡습지 데크길을 걸어 올라가니 생태연못이 기다리고 있다.

생태연못에는 노랑어리연꽃잎이 둥둥 떠 있다. 이곳 생태연못에는 여름철이면 노랑어리연꽃뿐만 아니라 멸종위기 2급 식물인 가시연꽃도 핀다.

운곡습지 생태연못에는 노랑어리연꽃잎이 둥둥 떠 있다. 이곳 생태연못에는 여름철이면 노랑어리연꽃뿐만 아니라 멸종위기 2급 식물인 가시연꽃도 핀다.

운곡습지와 운곡저수지 주변에는 다양한 생물이 서식한다. 376종의 식물, 390종에 이르는 육상곤충, 24종의 저서무척추동물, 12종의 양서 파충류, 51종의 조류, 11종의 포유류 등 총 864종의 생물이 서식할 정도로 생물다양성이 높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과 희귀종의 생태적 서식지로 보전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생태연못에서 매산재라 불리는 고개를 넘으면 고창 고인돌유적지로 이어진다. 고인돌유적지에서 생태연못을 거쳐 운곡습지홍보관까지 3.6㎞를 걷는 길은 운곡습지 생태길 1코스다.

우리는 생태연못을 탐방하고 나서 운곡저수지를 순환하는 운곡습지 생태길 2코스로 접어든다.

울창한 숲길에서 나무 사이로 보이는 운곡저수지의 물결이 잔잔하다. 길은 호반 산자락을 굽이돌면서 이어진다. 숲길은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려올 뿐 한적하고 고요하다. 잠시 물가로 내려가 운곡저수지를 바라본다. 저수지 건너편으로 조금 전 걸었던 호반길이 이어지고, 산봉우리들이 호수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포근하다. 한낮의 산봉우리들은 저수지 물위에 자신의 모습을 내려놓고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한 사람이 걸을 수 있을 정도의 산길은 운곡댐 아래 용계마을로 이어진다. 용계마을에서 생태길은 주차장이 있는 운곡습지탐방안내소로 이어지는 도로 갓길을 따른다. 운곡습지 유스호스텔도 호수변에 자리를 잡았다.

탐방안내소에 도착하자 아침에 한산했던 주차장이 차량으로 꽉 들어차 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운곡습지를 탐방한다는 증거다. 많은 사람들이 운곡습지 생태길을 걸으며 생태적 감수성을 키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고창 운곡습지 생태길은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운곡습지를 찾아가는 생태탐방로로, 고인돌 유적을 만나고 고즈넉한 운곡저수지 호반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운곡습지 생태길은 총 4개 코스인데, 그 중 2코스는 운곡저수지 둘레를 한 바퀴 돌아 원점으로 회귀하는 코스다.
※운곡습지 생태길 2코스 : 운곡습지탐방안내소→안덕제→운곡서원→운곡습지생태공원→소망의 종→생태둠벙→용계마을→운곡습지 유스호스텔→운곡습지탐방안내소
▶거리, 소요시간 : 9.5㎞, 3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운곡습지 탐방안내소(전북 고창군 아산면 운곡서원길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