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518 어매’

본사 부회장

2022년 05월 18일(수) 20:05
다시 오월이다. 42년째 오월이지만 여전히 먹먹하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생생하게 겪고, 그 광주를 삶터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숙명같은 통증일 것이다.

42년동안 매년 약을 발라도 아물지 않던 상처가 몇해전부터 딱정이가 생기는 듯 했는데, 어제 저녁, 다시 흉터가 벌어지고 피가 났다. 18일 저녁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오월어머니들이 직접 꾸민 ‘오월 어머니의 노래’ 공연을 보고 다시 ‘오월 몸살’이 도졌다.

당시 자식과 남편을 잃거나 가족을 잃은 고통을 겪었던 오월어머니들이 고통의 시간, 아픔의 강을 건너고 40여년 한맺힌 삶을 노래로 기록해 역사와 예술로 승화한 이 공연은 광주사람으로서는 편히 볼 수 없는 진혼곡 같았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오월광주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3년 여 동안 이 공연을 준비한 모양이다. 2019년 오월어머니 15명의 삶을 수필과 시로 풀어내 책자로 발간하고 오월어머니 개개인의 사연을 노랫말로 담은 곡을 완성했다. 지난해 ‘오월어머니의 노래’ 음반을 제작해 발표회를 가졌고, 그 노래들로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이번 공연에는 오월어머니 15명이 출연해 저마다 사연을 담은 개인곡 15곡과 합창곡 ‘5·18 어매’ 등을 들려주었다. 무대 배경은 80년 당시 모습과 현재 모습을 대비해 극적 요소가 가미됐다. 열다섯 분의 어머니는 김길자, 김옥희, 김점례, 김정자, 박유덕, 박행순(박관현 열사 누나), 박형순, 원사순, 이근례, 이명자, 이향란, 임근단, 임현서, 정동순, 추혜성씨다.

김옥희 어머니는 80년 5월 광주에서 세상을 등진 남편을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은 채 노래로 불렀다. 그이는 상무대의 ‘30번 남자’였다. 고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인 김길자씨는 “5월26일 도청 민원실에서 재학이를 만났제. 오늘 저녁에 계엄군이 쳐들어 온단다. 막차를 타고 온다고 해서 그냥왔제. 그게 마지막이었제” 멘트를 하면서 ‘재학아 보고싶어’ 오열했다. 광주상고 1학년이 된 열일곱살 재학이는 최후항쟁이 벌어진 옛 전남도청에 끝까지 남아 있다가 무력 진압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청각장애를 지녔기에 총소리를 듣지 못해 죽어야 했던 첫 희생자 고 김경철열사 임근단 어머니는 ‘우리네 벗님들아 내 말 좀 들어주소, 그리움 품어 안고 한평생 견뎌왔네, 경철이 손을 잡고 세월을 이겼으니 우리도 넘어가세 망월동 망월동 넘어가세’라 노래했다. 스물 세살 청년 고 장재철열사는 부상자를 호송하는 과정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어머니 김점례여사는 ‘너를 잊은 적 없었지 너를 잊을 수 없었지 그 해 늦은 봄날에 넌 내 안에 다시 살아났지’라고 노래했다.

이들은 마지막 노래로도 ‘내 이름은 5·18 어매’를 불렀다. ‘한 많은 사연 말도 못한 채 울어예는 5·18 어매, 내 이름은 5·18 어매 봄이 오면 서러운 어매 못다 한 사랑 가슴에 품고 울어 예는 5·18 어매들’

이래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세월이 갈수록 슬픔은 더 깊어지고 그리움은 더 짙어졌다. 열다섯 분 어머니가 가슴 속에 묻어온 1980년 그날의 이야기, 그 노래는 우리의 노래였다. 22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다시 찾은 아들 호영이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노래하는 이근례 어머니의 ‘도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가족을 잃고 못 박힌 가슴으로 뜨겁게 살아온 오월 가족들에게 전하는 김정자 어머니의 ‘별이 된 사람들’과 사형수인 남편을 살려내고자 평생 투쟁의 삶을 살아온 이명자 어머니의 ‘오월 새’가 가슴에 화살촉으로 와 박혔다.

518어매들과 우리는 정말 징한 놈의 세상을 살았다. 죽으면서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두고 간 5·18열사들을 아직도 보내지 못하고 산 세월이 세월이겠는가.

그러나, 그런데, 1980년 이렇게 희생자는 발생했고 그 기록이 생생하게 남아있고 세계 유네스코에도 등재가 되었지만 아직도 가해자를 명확히 가리지 못하고 있다. 미완의 역사는 피해 당사자들로 하여금 아프지만 이런 노래들을 더 피눈물나게 부르도록 한다.

5·18민주화운동은 극한의 국가범죄 또는 국가폭력에 대항하여, 그 어떠한 권력도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국가의 존재의의와 근거가 국민의 인권보장에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위배하는 권력에 대해 저항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확보되는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5·18민주화운동은 우리 민주화운동의 역사에서 우뚝 솟은 큰 봉우리이며 어두운 밤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별과 같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 헌법에 추상적으로 표현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가장 뚜렷하게 구현한 역사적 실체이며, 그런 점에서 헌법의 모든 가치의 구체화이며 우리 공동체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이 되었다.

굳이 518어매들의 절절한 소망을 빌리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지금 누리는 자유가 광주시민과 518어매들의 피눈물로 한올한올 짜여진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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