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시대의 어둠 넘어 전 국민에게 승화·계승돼야”

'5·18과 시간의 타인' 포럼

2022년 05월 22일(일) 19:43
5·18민주화운동 42주년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제20차 광주정신포럼이 지난 21일 광주 동구 전일빌딩에서 ‘5·18과 시간의 타인’이란 주제로 열렸다./김애리 기자
광주 5·18민주화운동 42주년을 맞아 1980년 당시 항쟁에 참여한 후 사라져간 유가족의 구술을 통해 이들의 삶과 의미를 되돌아보며 미완의 과제를 재조명하는 제20차 광주정신포럼이 지난 21일 광주에서 열렸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과 광주매일신문은 이날 오후 2시 광주 동구 전일빌딩에서 포럼 ‘5·18과 시간의 타인’을 개최하며 80년 5월 당시 민주화 운동의 물결에 휩쓸려 고문과 부상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가 어떻게 가족에게 이어졌는지 생애 전반을 조명했다. 참석자들을 오늘날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인권 신장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민주·인권·평화의 광주정신을 현재화하며 광주를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대한민국 역사 속 전 국민의 5·18로 승화·계승하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 /편집자 註

◇발제
유가족 김동명(김영철 열사)
유가족 이해모(이정모 열사)
◇논평
김명희(경상국립대학교 교수)
김석웅(심리건강연구소 소장)


●고(故)김영철 열사 유가족 김동명 ‘5·18민주화 운동, 그 후’
“역사 폄훼 왜곡 멈추고 오월정신 계승돼야”

42년이나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그날의 진실에 대한 폄훼와 왜곡은 여전하다. 특히 가족들의 실상에 대한 거짓은 여전히 난무하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1980년 5월27일 이후 1년 7개월여 동안 모습을 감췄다. 이후 1981년 12월25일 아버지는 크리스마스 특사 석방으로 가족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전신 가득했던 생기는 찾아볼 수 없었고 아버지의 왼쪽 손과 왼쪽 발은 그 기능을 잃었다.

아버지가 병원과 집을 오가며 병마와 싸우는 동안 간첩과 폭도라는 누명은 가족들에게 따라붙었다. 특히 학창시절과 군 복무 내내 따라붙었던 ‘불순분자의 자식’이란 꼬리표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불가능케 했다.

대학 졸업 이후 항상 불안감과 우울감에 시달려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없었다. 불행 중 다행히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려 두 자녀를 낳아 키고 있는 가장이자, 아버지가 됐지만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증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렇듯 명확한 ‘사실’에 대해 일부 국회의원들은 5·18 유공자들이 엄청난 수혜를 받으며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고 망언을 내뱉는다. 그렇게 사실처럼 왜곡된 진실에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불안감과 초조함, 우울증에 시달리며 끊을 수 없는 트라우마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 그날의 진실과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삶을 널리 알리는 일은 지속돼야 한다. 그것을 통해 ‘오월의 정신’은 계승될 수 있으며 역사는 올바르게 정립된다.

그렇기에 5·18은 피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가 함께 관심 갖고 미완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하고 동참해야 할 과업이다.



●고(故) 이정모 열사 유가족 이해모 ‘5·18 이해와 공존’
“열사의 삶과 이야기 기록 통해 원통함 풀어야”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내던진 열사들의 삶은 기록관의 작업과 유족의 구술을 통해 알려지고 있지만 모두가 그렇진 않다. 당시 평범한 브로크공이었던 나의 형의 생에사도 그랬다.

42년 전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형은 1980년 5월28일 상무대 영창에 수감됐다. 그곳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온갖 고문과 구타를 당해 심신은 무너졌다.

이후 10월24일 석방됐지만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풀 곳은 술뿐이었다.

2-3개월에 한 번씩 술에 잔뜩 취한 채 집에 온 형은 아버지와 다툰 뒤 홀연히 떠나길 반복했다.

그러다 1984년 12월5일 전남대병원 앞 여인숙 작은 골방에서 생을 마감했다.

가정에서 먼저 떠난 형의 이야기는 금기가 됐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80년 오월의 아픔과 고통이 조금씩 이해됐고 왜 형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야 했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던 중 형의 재판기록을 입수했고 그간 의문투성이였던 행적을 맞출 수 있었다.

또 형과 같은 자살자들이 48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들의 고통과 눈물을 함께 나누기 위해 ‘이름 없이 죽어간 브로크공, 오월시민군 이정모’ 생애사를 집필했다.

80년 오월 광주의 죽음은 이 땅에 민주주의라는 싹을 틔웠다.

그렇지만 일부 열사의 투쟁이 전해지고 있는 것과 달리 대다수의 삶은 여전히 묻혀 있다.

그렇기에 5·18자살자와 그 가족들이 쉬쉬하며 감내해야 했던 속울음을 관음(觀音)의 손과 눈으로 들여다보며 이들의 삶과 이야기를 기록을 통해 해원해야 한다.



●경상국립대 김명희 교수 ‘5·18 그 사회적 타살과 우리 안의 타인’
“심각한 인권 침해당한 유가족…전향적 해법 필요”

모든 자살 문제가 그렇듯 현재까지 추정되는 48명의 5·18 자살자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면면과 원인들은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또 온전했던 이들의 생명을 파멸에 이르게 한 힘들은 과연 무엇이었고 원인과 과정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도 필요하다.

김영철, 이정모 두 고인(故人)의 삶에서 볼 수 있듯 5·18생존피해자들의 죽음은 국가폭력의 트라우마로 인한 사회적 타살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명징하게 보여줬고 5·18 생존피해자의 재희생자화 경로를 드러냄과 동시에 유가족들이 감내해야 했던 사회적 고통과 그 현재성을 드러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국가기관이 자행한 감시와 사찰 등 인권 침해가 그 가족들에게까지 적용됐다는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 토대이자 인권의 가장 기초적 전제인 생명과 안전, 신체의 자유가 침해됐다는 것은 매우 심각하고 위중한 인권침해 상황의 반증이다.

사생활권 침해는 5·18 생존자들의 정신세계와 가족들의 행동 반경을 심각하게 제약했고 이들의 피해회복의 권리를 크게 제약했다.

또 5·18 자살자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이 제2세대와 가족까지 확대·재생산되며 세대를 통해 트라우마가 전이된 것을 볼 때 5·18유가족은 이중 삼중의 국가폭력의 피해자임이 명확하다.

그렇기에 5·18 복합적 집단트라우마의 작동방식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에 근거해 사회적 치유와 회복의 방향을 모색하는 전향적 해법이 필요하며 ‘잊혀진 서사 복원’을 통해 5·18의 아픔에 대한 우리의 앎을 확대해야만 ‘피해자-사회 중심’의 트라우마 치유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심리건강연구소 김석웅 소장 ‘각자의 시간 속에 멈춰 있는 오월’
“진실 밝혀 고통받은 피해자 삶과 물음 답변해야”

42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흘렀건만 피해자 가족이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 그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아 피해자에게 5월은 해마다 돌아오는 야속한 슬픔이다.

그간 5·18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피해를 경험하신 분들의 이야기는 보고서로 옮겨졌으며 연구 결과는 모두 ‘국가폭력’이란 하나의 방향을 향해 있었다.

그렇지만 5·18민주화운동의 위상은 여전히 불안정하며 피해자들의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전두환이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죽음을 맞이해 피해자들의 황망함은 커졌고 더디기만 한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을 빨갱이, 간첩 등으로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은 5·18민주화운동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또 국가의 계획적인 폭력과 왜곡 사실을 모르는 시민들로부터 ‘폭도’, ‘빨갱이’라는 오명을 들으며 ‘사회적 불인정’에 처한 피해자들은 법과 제도의 변두리로 내몰린 채 공동체 일원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국가폭력 트라우마의 회복과정에서 ‘사회적 인정’은 필수적인 요소다. 이를 위해선 피해자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정체성 회복을 도와야 한다.

우리가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야 할 책임과 의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희생을 통해 나은 삶을 살고 있다. 그런 만큼 그들의 삶을 공동체에 다시 온전하게 돌려놓기 위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며 생애사를 수집하고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

그렇게 진실을 밝혀 가족의 고통과 함께 아파야 했던 삶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야 말로 피해자 각자의 시간 속에 멈춰 있는 5월을 지금, 여기로 가져오는 방법이다.

/정리=안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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