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을 여는 詩] 채소전 김보살 / 이구학 |
| 2022년 06월 06일(월) 1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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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싸움 나면 어쩌려 그러냐니
내 평생 싸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우.
진종일 날파리만 날리는 그 할머니
이리 팔리지 않으면 어쩌냐고 하니까는
까짓것 못 팔면 말지 팔려고 나왔깐.
(시집 ‘나 지금 여기 있기에’, 한림, 2022.)
[시의 눈]
찌든 골판지 좌판 앞입니다. 그보다 더 찌든 세월 더께를 덤으로 할머니가 앉았습니다. 유월 땡볕을 보자기인 듯 어깨에 걸쳤군요. ‘이 잡것들 지랄 보고만 간다냐’ 이 늘어진 욕소리로 시장통은 다소 풍성합니다. 헌데 누구 하나 시비 거는 사람 없군요. 시든 채소에 관심을 주는 건 파리뿐이지요. ‘참 이리 안 팔려서 어쩐다요?’ 난 걱정스레 묻지요. 헌데 돌아온 답이 ‘까짓것 못 팔면 말지’ 내사 ‘팔려고 나왔깐’. 허, 배추 물기 빠는 파리가 알면 기뻐 ‘와!’ 소릴 다 지르겠어요. 순간 이 보살이 치는 죽비를 맞고 맙니다. 아따, 집에 있으면 답답해 구경 삼아 나왔다 하잖아요. 고추·파·마늘을 챙기는 건 핑계일까요? 그건 욕쟁이의 연출에 곁두리 액스트라일 뿐이지요. 우린 무슨 걸작을 보면 벽에 걸려 합니다. 시장엔 이런 초대작 같은 게 수두룩 하지요. 오늘 말바우의 걸작 한 편을 해거름에 모셔옵니다. 그래 얼른 폰에 할멈의 주름을 담지요. ‘잡눔아 뭐슬 찌거? 꼬치보다 주름이 욕심나냐?’ 그녀 욕을 난 기억의 벽에 오래 걸어두려 합니다. 이구학 시인은 전북 순창에서 나, 2000년 ‘열린시학’으로 등단해 시조집 ‘가면의 나라’(2006)를 냈습니다. 그는 향토적 생명 의지를 오래 가다듬어 찐한 살냄새로 입히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