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로’, 또 ‘같이’ / 김운기 |
| 2022년 06월 07일(화) 19:37 |
|
며칠 전, 퇴근 후 집에 들렀다가 모임 장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약속 시각에 여유가 있던 터라 낯익은 번호의 버스가 보이길래 가볍게 버스에 올라탔다.
퇴근 시간이라 다소 혼잡한 버스 안에서 거리 두기의 완화됨을 실감하고 있는데, 수줍게 미소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라고 말하는 여고생의 모습에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모두 흐뭇해지며 그 ‘어르신’의 방향으로 눈길이 모였다. 그런데 아뿔싸, 그 ‘어르신’이 ‘나’라니! 당황한 나는 극구 사양하며 괜찮다는 말을 연이어서 했지만, 이미 버스 안에서 ‘어르신’이 된 나는 여고생의 민망함(?)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그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은 왜 그리도 오래 걸리는지, 별별 생각이 다 들어 표정 관리가 안 되기 시작했다. 내 나이 이제 겨우 50대 중반인데, 더군다나 마스크까지 써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는데, 생각지도 못한 ‘어르신 대접’에 불편한 감정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마음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이내 부끄러워졌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서는 외모를 보고 상대방을 판단한다. 여고생 또한 희끗희끗한 내 머리와 마스크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본인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내 모습에 자리를 양보한 것이다. 어른답지 못하게 잠시나마 옹졸했던 나를 반성한다. 젊은이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고 불편해 보이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어른들은 나보다 어려 보이고 약해 보이는 사람을 보호하고 배려한다. 이것이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사람 사는 모습이고, 사회에서 개개인에게 기대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들이 스며들고 어우러져 사회다운 사회가 조성된다.
그동안 얼굴 대부분을 가렸던 마스크를 점차 벗는 시기가 왔다. 누군가가 그랬다. 마스크를 쓰니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보지 못해 편하다고. 그런데 나를 알아보지 못해 편하다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멀리하고 개인주의화 되는 것 같아 괜히 서글프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면서 서로를 돌아보는 ‘따로’, 또 같이의 과제가 주어진 시점이다. 나와 우리가 모여 광주가 아름답게 가꾸어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