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동 붕괴 참사’ 1주기](하)과제와 전망 책임 떠넘기기 급급…‘사후 약방문’식 대책 끝내야 책임소재 부인 재판 장기화…현산 과태료 부과만 상주감리제 도입…‘학동 참사 방지법’ 시행 예고 1심 결과에 구상권 ‘가닥’…“법적 처벌 강화해야” 오복 기자

2022년 06월 08일(수) 20:11

총체적 부실로 인한 인재로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참사가 사고 발생 1년을 맞았다. 사진은 8일 가림막으로 가려진 학동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참사 현장./김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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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발생 1년을 맞은 광주 학동 참사는 전형적인 인재(人災)로 판명됐지만, 책임 소재를 규명하는 데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원청, 하청, 감리 등 관계자들이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있어서다. 또 정부는 대형 사고가 터질때마다 ‘사후 약방문’식 땜질 처방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평소 건설현장에서 안전교육 및 감리 상주는 물론 사고 원인이 인재로 드러날 경우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3월 학동 붕괴 참사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해 8개월의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한 달여 만인 4월 영업정지 처분을 철회하고 4억623만4천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대체하면서 솜방망이 처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 3월 학동 관할 지자체인 광주 동구는 사회재난 구호 및 복구지원 관련 조례에 따른 피해 원인제공자인 현산에 책임을 물어 구상권을 청구했다.

이는 생계안정지원을 위한 구호금 1억8천만원과 피해자 명복 기원을 위한 49재 비용 2천670만원, 피해자 소송에 따른 변호사 선임비 1억8천700만원 등을 포함한 총 3억9천370만원이다.

하지만 현산은 유가족에 대한 구호금이 ‘보상금 합의금’과 중복되는 것으로 판단해 구상권 금액에 동의하지 않았고, 학동 관련 1심 재판 결과에 따라 정확한 금액을 확정할 수 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지목된 피의자(10명)에 대한 재판은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지난해 9월1일 첫 재판을 시작으로 지난달 30일까지 총 25번의 재판이 열렸다.

학동4구역 감리를 맡았던 감리사 차모씨는 건축물관리법위반 혐의, 현대산업개발 안전부장·현장소장 석면 철거 하청을 맡았던 다원이앤씨 현장소장 등 6명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현산과 백솔건설, 한솔기업 등은 산업안전보건법위반 혐의를 적용해 재판 중에 있다.

재판에서 피고인들은 해체 계획서대로 철거를 진행하지 않은 점은 인정했지만 건물의 붕괴와 직접적 관계, 책임 소지 등 혐의를 일부 부인했다.

이처럼 기존 건설 현장에서 설계 변경 등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기록·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건설 주체의 책임 소재 규명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현장에서 인명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원청과 하청, 감리 간에 책임 소재를 떠넘기는 식의 처벌이 이뤄져 온 이유로 공사 관계자들의 책임 소재를 규명하고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 마련이 무엇보다 시급한 실정이다.

책임자 처벌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지만 각 부처에서는 학동참사와 같은 일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광주 동구는 지난해 광주시를 통해 11건의 ‘건축물 해체공사장의 안전관리 강화를 위한 법령 개선’ 사항을 국토부에 건의했다.

이 개선안에는 해체공사의 상주감리제도 도입 및 자격등록 기준 강화, 해체계획서 작성 자격 강화, 안전관리계획서 작성 대상 확대, 선감리 승인제도 등이 포함됐다.

국토부와 국회에서는 공사 현장의 사고 근절을 위해 보다 세부적이고 엄정한 방안들을 내놓았다.

국토부는 지난 3월 ‘부실시공 근절방안’을 발표하고 부실시공 적발 시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할 것을 예고했다.

기존 중대 사고 발생시 지자체에서 처분권한 위임, 형사판결 결과를 고려해 위법성을 판단하는 절차를 대폭 줄여 국토부 직권처분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시공품질 관리강화법으로 표준시방서 고도화 및 활용확대 ▲주요 의사결정 이력 관리 의무화 ▲레미콘 공장 시스템 인증제 도입 ▲현장 레미콘 품질시험 개선 ▲품질관리자 배치 기준 개선 ▲품질관리자 업무 겸임 제한 강화 ▲적정 공사 기간 및 공사비 확보 ▲건설기계 계약 구조 개선 등을 방안으로 제시했다.

또한 부실시공 원·투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 불법하도급과 무관하게 부실시공을 근본적으로 막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제도는 시설물 중대 손괴로 일반인 3명 또는 근로자 5명 이상 사망시 등록말소가 가능하고 향후 5년간 신규 등록이 제한된다. 또한 5년간 부실시공 5회 적발시에도 등록말소 되고 향후 3년간 신규 등록이 제한된다.

국회에서는 철거 현장내 안전불감증 등의 근절방안으로 ‘학동 참사 방지법’을 입법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조오섭(광주 북구갑)의원에 따르면 철거현장 상주 감리 배치를 의무화한 이른바 ‘학동참사 방지법(건축물관리법 일부개정안)’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은 철거 건물 붕괴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상주 감리제’ 도입을 골자로 한다.

현행법은 건축물 허가권자가 해체공사감리자를 지정해 안전관리를 하게 돼 있으나 현장감리자의 부재가 안전관리 소홀로 이어지는 문제점이 있다.

이에 해체공사 감리자는 수시 또는 필요할 때 해체공사의 현장에서 감리업무를 수행하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물의 해체공사는 전체공사기간 감리 업무를 수행하도록 의무화 하는 관련법을 신설했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조오섭 의원은 “철거현장 내 안전불감증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생떼같은 목숨을 잃었고 유족들은 아직도 고통받고 있다”며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현대산업개발에 끝까지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