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질갱이꽃 / 오재동

2022년 06월 12일(일) 19:11

오재동

활활 타오른 시골길에
튼튼한 뿌리 박고
황토먼지 부옇게 뒤집어쓴
밟으면 밟을수록
그만큼 곱게 피어난
울화통에 특효가 있다는 질갱이꽃.
꽃피는 봄날은 가고
붉은 햇살이 푹푹 내리는
구롱댁 신발이 헤지도록 걸어 다녔다는
서러운 흙바람길
천년 세월에도 마르지 않을 눈물 토하며
흘러왔다 밀려간
꽃술 따려는 병든 행렬.
(시집 ‘별아, 푸른 별아’, 명성서림, 2022.)

[시의 눈]

‘흙바람길’ 가뭄입니다. 해도 ‘질갱이’는 때를 만났습니다. 스트레스 땐 ‘밟으면 밟을수록’ 힘도 얻지요. 오천 년 풀뿌리 민초가 그 이름입니다. 흉년엔 질갱이를 캐와 나물을 해 먹기도 했지요. 해서, 난 가난했지만 강해졌는지 몰라요. 요즘 당뇨에 좋다고 해 찾는 이가 많다지만 고관대작들은 그를 싫어하지요. 짓밟아도 질기게 질리게도 질질 일어서니까요. 한때 내 승진 기횔 가로채간 이가 있었지요. 질갱이국을 먹으며 부차가 가시장작에 ‘와신상담’이라도 하듯 참 ‘질지리’ 못난 ‘울화통’이었구만요. 그 고백을 옛 일기에서 우연히 발견합니다. 보니, 흙탕만 둘러쓴 부질없는 질갱이 짓거리였네요. 에라 잉! 30년을 견뎌온 질긴 노끈의 일기를 확 잡아 찢고 맙니다. 오재동 시인은 전남 고흥에서 나, 198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198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해, 시집 ‘운암리 시편’(2007), ‘그래도 찔레꽃은 피는데’(2014) 등을 냈습니다. 그는 베틀노래를 푸는 정한의 시심으로 당산의 그늘 같은 서정을 뿜어내는 눈썹 척척한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