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호남 유학(儒學)의 현실 / 오수열
2022년 06월 14일(화) 20:26
오수열 조선대 명예교수 / 광주유학대학 학장
대학에서 동양정치사상사를 가르쳐온 인연으로 정년퇴임 후 향교(鄕校)에서 운영하는 유학대학에서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조선조(朝鮮朝) 500년 동안 지역 유일의 관학(官學)으로 유학교육을 담당해 왔던 곳이 향교이다.

뿐만 아니라 소년기까지만 하여도 모든 고을에서 향교의 위상이 상당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던 까닭에 제반 교육시설이나 재원(財源) 등에서 크게 부족하지 않으리라는 기대감 속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2018년 봄 유학대학의 교학 책임을 수락하였다.

그러나 부임 후 직면한 현실은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녹록하지 않았다. 문사(門事)에 관여하면서 유학에 대한 갈등을 느꼈거나 퇴직 후 보다 향기로운 삶에 접하기 위해 고전(古典)과 한시(漢詩) 공부를 시작한 분들의 높은 향학열을 충족시켜 주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였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러한 상황을 접한 시당국에서 지원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힘입어 금년에는 개교 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학생들이 성균관(成均館)을 찾아 대성전에서 공자(孔子)를 위시한 선현들을 알묘(謁廟)하고 명륜당에서 치열하게 공부했던 조선 유생(儒生)들의 향기를 접할 수 있었으니 큰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광주유학대학의 교수와 학생이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임고서원(臨皐書院)을 방문했다고 한다. 임고서원은 고려 말의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를 모신 서원이다. 그들은 조선 중기 광산(光山) 출신으로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금양군 오겸(吳謙)이 정몽주의 생가(生家)를 찾아 ‘詠文忠公靑林舊基’라는 한시(漢詩) 한 수를 남긴 사실이 있는데도 그곳에는 그에 대한 흔적이 없음을 발견하고 그곳 관계자에게 이를 지적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나주오씨(羅州吳氏) 문중에서 그 사실을 기록한 비(碑)를 건립할 의사를 표명하자 그 관계자가 “내년에 시당국으로부터 200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대대적인 정비를 할 계획이고 그때 비단 오겸 뿐만 아니라 관련된 모든 사적(事跡)을 보완할 예정이니 그때 반영하겠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인구 10여만 명의 보통시에 불과한 영천시의 문화재와 역사유적에 대한 그 지원 규모가 이 정도라니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주에는 학생들과 함께 경상남도 함양군에 있는 일두(一�f) 정여창의 남계서원( 溪書院)과 탁영(濯纓) 김일손의 청계서원을 다녀왔다. 조선의 유학사(儒學史)를 볼 때, 극심한 당쟁과 혼란 속에서 관학(官學)인 향교 보다는 사학(私學)인 서원(書院)이 훨씬 빛을 발하였고 그 결과 2019년 전국의 대표적인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9곳의 서원 가운데 6곳이 영남지역에 위치하고, 호남지역에는 장성군의 필암서원(筆巖書院)과 정읍시의 무성서원(武城書院) 두 곳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널리 알려진 바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유산들을 가꾸고 활용하려는 노력에서 두 지역의 격차가 너무나 크다는 사실이다. 역시 우리들이 찾았을 때에도 그곳은 개·보수 공사에 땀 흘리는 종사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영남지역은 지금도 거의 모든 고을에서 시장(市長)·군수(郡守)들이 취임 후 가장 먼저 찾는 곳이 그 지역의 향교라고 한다. 필자는 줄곧 우리들에게 유교(儒敎)는 이미 종교가 아니며 하나의 ‘정신적 자양분’이고, 그 흔적들은 우리민족의 유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찌 호남이라고 이러한 유산들이 남아있지 않겠는가. 문제는 그것을 대하는 우리들의 관심과 자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와 유산은 비단 과거의 것들만이 아니고, 지금의 것들도 언젠가는 역사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가꾸고 돌보아야 할 것이다.

향교를 오가며 광주시민의 얼이 남아있는 광주공원 옆 천변에 복원되고 있는 희경루(喜慶樓)를 볼 때마다 조선 3대 정자라고 일컫는 진주의 촉석루(矗石樓), 밀양의 영남루(嶺南樓), 평양의 부벽루(浮碧樓)와 함께 먼 훗날 광주의 희경루가 한국의 4대 정자로 꼽힐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져본다.
이 기사는 광주매일신문 홈페이지(kjdaily.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kjdaily.com/1655205984576828028
프린트 시간 : 2022년 09월 28일 06: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