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3년간 숨은 주인공을 찾아서](1)유미자 빛고을전남대병원 간호과장

“국가 재난상황에 전사처럼 뭉쳐 한 마음으로 대응”
25차례 바뀐 지침에도 환자 불안감 없애고자 다방면 노력
코호트 격리·대구확진자 이송 등 견뎌낸 원동력은 환자
38년차 간호사로서 자부심…이타적 삶에 따른 행복감

오복 기자
2022년 06월 27일(월) 20:19
유미자 빛고을전남대병원 간호과장
끝없는 터널처럼 보였던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추세로 접어들었다.

지난 2019년 12월 중국 우한시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19가 집단 발병하기 시작, 202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 즉 펜데믹을 선포한지 3년 6개월 만이다.

연일 늘어나는 확진자와 코로나19의 불안·공포를 이겨낸 광주·전남지역의 감염병 극복 국면에는 주말과 휴일마저 반납하고 확진환자 이송·치료·역학조사 등 다방면에서 활약해온 일선 의료진들의 희생이 녹아들어 있다.

본보는 광주시, 보건소, 소방서, 감염병 전담병원 등 최일선에서 시민들에 헌신해온 숨은 주인공을 만나 이들의 희생 정신, 숨가빴던 현장 상황, 남들에게 전하지 못했던 응어리, 의료시스템 전환 등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 등을 7차례에 걸쳐 들어봤다.<편집자주>


▲코로나19가 첫 발발했던 당시의 긴박했던 현장을 돌아본다면.

-2020년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병은 말 그대로 국가적인 재난 상황이었다.

쉴 새 없이 수많은 위급 상황에 직면했고 특히 병원 근무자들은 코로나19 확진환자 치료를 위해 곧바로 배치돼 현장에서 숨 가쁘게 움직였다.

확진자 선별검사를 위한 선별진료소 운영, 병동 확진환자 치료는 물론 코호트 격리치료에 따른 검사, 영상, 배식 지원 등 시스템 구축을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뤄졌다. 수 천명에 달하는 외래 진료 환자들을 비대면 진료로 전환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병원 앞은 예약 환자로 도로까지 메워져 있었다.

근무자들은 방역 지침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를 따르기 위해 예약환자의 인적사항을 수기로 작성, 해당 진료과 의사에게 연결해 약 처방전, 주사체 처방을 받도록 했다. 혼란 속에서 이뤄지는 진료는 더뎠고, 환자들은 고통을 호소했다.

이처럼 험난했던 현장 치료 과정은 “어서 이 상황이 좋아지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매 순간 마음속에서 저절로 나오게 했다.


▲코로나19 초창기 관리 지침 미비에 따른 진료시스템 전환이 끊이지 않고 이뤄졌다. 적응이 쉽지 않았을텐데.

-대응시설 부족은 물론 관련 시스템과 인력 배치 등 감염병 관련 지침을 마련해 둔 상태가 아니어서 일선 현장은 버거운 상황에 봉착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들이 확진 판정을 받는 가운데 확진자·접촉자 진료 전담 인력을 배치하기 위한 관련 교육과 지침에 따른 시스템 구축이 바쁘게 돌아갔다.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안과 지침 공지는 매번 바뀌었고 내부적으로는 직원들의 복무 관련 사항, 안내문 표지 게시 등 수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져나온 2020년 2월부터 해당 사태가 움츠러든 최근까지 변경된 행정명령이 25차례 가량에 달했기 때문이다. 확진 환자의 증감에 맞춰 일반병동을 닫고 열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했다. 일반병동 등을 위층만 열거나 한층씩 폐쇄·개방조치하는 식이었는데 업무 소진도가 높아 심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았다.


▲코호트 격리와 의료진 확진에 따른 의료공백이 일선 의료진의 가장 컸던 고통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의 상황은 어땠는지.

-병상에 입원해 있었던 환자가 확진판정을 받았던 병동들은 코호트 격리로 ‘셧다운’에 들어갔어야 했다.

병원은 전체적인 부서의 인력과 보호자들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환자가 1명이라도 확진된 경우 그 구역의 담당 간호사, 의사, 환경미화원 등 모두 자동 격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전남대학교병원 본원에 근무했을 때는 코호트에 들어간 병동에 50명씩 3교대로 근무해 접촉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능동·수동감시로 분류되는 상황 속 코호트 격리가 시행되는 2주 동안은 외부 외출이 불가능했다. 이 또한 빠른 조치가 이뤄져야만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아 모두가 자연스럽게 견디는 식이었다.

의료진 확진에 따른 의료공백도 마찬가지다.

의료진의 감염은 병원 전체적인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는데, 의료 공백이 나와도 도움이 필요한 입원·외래 환자는 늘어만 갔다. 확진 판정을 받은 의료진이 생기면 남은 인력들은 본인의 업무에 더해 빈 자리를 채워야 했다.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은 병동에서 공동 격리돼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고, 확진자와 접점이 있던 부서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은 귀가하지 못하고 다른 곳에 거처를 마련해 지내야 했다.

아이들을 부모님 댁에 맡기고 혼자 생활하는 간호사들도 많았다. 어린 아이가 있는 간호사들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보고 함께 마음 아파했던 시간들이었다.

완전 병동 봉쇄가 이뤄진 병원에서는 여러 어려움이 뒤따랐지만 주요 보직자와 실무자들의 유기적인 대응과 적극적인 협력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여기에는 의료진들이 가지는 환자에 대한 사명감이 주효했다. 모두가 함께 의료진으로서의 의무감과 책임감, 재난적 상황을 종료해야 한다는 의지를 가져 헤쳐나갈 수 있었다.
유미자 빛고을전남대병원 간호과장과 동료 간호사들이 빛고을전남대병원 코로나19 격리병상의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김애리 기자


▲가장 기억에 남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있다면.

-코로나가 확산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갑작스럽게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됐고, 31명의 대구 확진자분들이 먼 길을 달려 빛고을전남대병원으로 이송됐다.

감염병의 불안감과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자 매일 병상을 돌며 대화를 건넸고, 두려운 상황에서 전담병원의 역할과 더불어 심리적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

대구에서 온 모녀가 퇴원하던 날, 병원으로 찾아온 남편은 컵라면을 사와 감사인사를 전했다.

2살 된 딸아이와 본원을 찾은 엄마는 병마와 아이 돌봄으로 지쳐 입맛이 없어보였고 이에 간호사들은 직접 만든 나물무침과 김치, 아이의 간식거리를 수차례 식사 때 전달했다.

또 병실에 갇혀 답답해하는 아이를 위해 간호사들이 각자 집에서 장난감을 가져와 격리병실에 전달했다. 아이엄마는 퇴원하던 날 병원 홈페이지에 감사인사를 작성, 게시했고 우리들은 고된 와중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대구 환자들이 돌아간 이후 손편지, 꽃다발 등 감사 인사들이 수없이 도착했다.

한 소녀가 보낸 편지에는 ‘광주에서 여러 선생님들의 따뜻한 보살핌과 염려 덕분에 완쾌해 자유를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다’면서 ‘늘 반복되는 일상에 불평했지만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번 기회에 뼈저리게 느꼈던 봄 날’이라고 적혀있었다.


▲마지막으로 광주 시민들과 동료 의료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두가 두려운 상황이었고 감염병에 대한 정보가 없어 공포와 불안감에 힘들었지만 전담병원으로서 의료인으로서 ‘우리가 아니면 누가 환자를 보살필 수 있나’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사처럼 일했던 전공의와 간호사 모두가 대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38년차 간호사지만 힘든 시간이 지나고 간호사로서 더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것은 이타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간호사 후배들을 보면 대부분 이타적 삶을 지향하고 있고, 이로 인해 다시 보람과 행복감을 느끼는 축복받는 삶이라고 자부한다.

우리 간호사들이 아무리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나아갈 수 있게 지탱해주는 사람은 우리를 필요로 하는 환자가 아닐까 싶다.

치료에 자신감이 생겼었다는 후배 간호사의 기특한 말을 들으며, 우리는 또 어떤 감염병과 마주칠지 모르겠지만 코로나 뿐 아니라 미래에 발생할 새로운 감염병에 대처하는 법을 결국 터득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 전과 후의 세상에서 다시 우리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길 바란다.

/오복 기자
오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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