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훈 교수의 일본 작가 비평](30)한국에서 바라본 마쓰다 도키코 戰後, 엄마들과 힘을 모아 진폐노동자 아픔을 대변하다 |
| 2022년 06월 29일(수) 1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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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에서는 학술대회에 대해 언급했다. 마쓰다 도키코의 생애와 문학 활동 조명으로 돌아와서 그녀의 80년대 후반을 주목해보자.
마쓰다 도키코가 ‘어머니는 지상에서 핵이 아니라 낙원을 추구합니다’라는 표제를 내걸고 고베시에서 열린 일본모친대회에서 기념 강연을 한 것은 1987년 여름이었다.
일본 모친대회는 어머니의 생명 양육 정신에 기반해 생명의 소중함과 평화의 중요성을 내외에 알리는 운동. 1995년 도쿄에서 열린 제1회 대회가 모태였다.
모친을 ‘모성을 지니는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한 통칭’으로 인식, ‘생명을 잉태하는 모친은 생명을 기르고 생명을 수호하는 것을 원한다’는 슬로건 하에 여성단체, 사회운동 단체, 노동조합, 교육단체,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실행위원회가 매년 개최하는 일본모친대회. 성별이나 신분 등에 상관없이 다수의 시민이 그 대회에 참석한다.(일본모친대회 홈페이지 등 참조)
작가, 노동운동가, 어머니의 삶을 살아온 마쓰다는 여러 고난을 극복하고 사회적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었다. 그런 만큼 감회가 새로웠을 터이다. 강연자로 참석한 그녀는 1만여 명의 청중 앞에서 “세계의 인류 50억 인구가 전부 여자의 배 속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했다. 나아가 핵의 공포를 엄마들이 나서서 차단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재앙이 마음 한구석에 항상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일본인에게 ‘원폭’이나, ‘핵’이라는 단어는 공포 그 자체다. 마쓰다가 일본모친대회 강연 1개월 전(87년 7월) ‘더없이 아름답고 풍부한 지구를’이라는 시를 집필한 것은 그녀의 뇌리에도 항상 ‘핵의 공포’라는 단어가 깊게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더없이 아름답고 풍부한 지구를-
더없이 아름답고 풍부한 지구를
죽음의 상인들 손에서
우리 엄마들 손으로
엄마들이여
엄마와 조모와 증조모여
미래의 엄마인 딸들이여
5만 발의 죽음의 핵병기에
그 천만 억 배의 엄마들인 우리
비핵 염원의 행위로 대항하자
그것을 위해
자식, 손자, 증손자 포함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손을 맞잡자
우리 동 세대 사람들 지구의 자식들
그 지구의 자식들 50억을 낳은 엄마들이여
자아! 어서 ― 1987년
마쓰다는 모친대회 개최 전부터 지구의 모든 엄마에게 바치는 노래를 이미 부르고 있었던 셈이다. 피폭자들의 처참한 일상과 고통을 고발한 오에 겐자부로의 ‘히로시마 노트’, 주검을 헤치고 물을 찾는 그들의 참혹한 현장을 그린 한수산의 ‘군함도’ 말미 등을 들추지 않더라도 ‘죽음의 핵병기’가 초래한 인류의 재앙에 대해선 상상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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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15일 모든 것이 불타 재로 변한 자신의 집터에서 물끄러미 하늘만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마쓰다였다. 전쟁을 몸소 체험하고 그 상흔이 어떠한 것인지 처절히 맛보며 살아온 그녀에게는 두 번 다시 그런 불행을 막기 위한 호소야말로 무엇보다 절실한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모친대회 2년 후에도 어김없이 엄마들에 대한 참여와 독려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 도쿄의 엄마들에게 -
도쿄의 엄마들이여
드디어 약속한 때가 왔어요, 도(都)의원 선거네요
당신들의 한 표로 아무쪼록 도쿄의 원폭 기지를 없애 주세요
그리고 많고 많은 귀여운 애들의 40명 학급을 늘려 주세요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비싼 도쿄의 수도 요금을 대폭 인하해 주세요
하물며 지갑 속 5엔 동전 1엔 동전까지 억지로 빼앗는 소비세를
당신들의 한 표로 폐지해 주세요
우리들의 피와 땀의 덩어리인 세금을 1전이라도 사람을 살육하는
군사비와 엎친 데 덮친 자민당의 악정에 사용되지 않도록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도쿄에
복지와 평화의 혁신 도정이 부활할 수 있도록
당신들의 한 표를 (하략) ― 1989년
강연 2년 후인 1989년에 집필한 시지만 평소 일관되게 주장해온 마쓰다의 호소가 가감 없이 반영된 작품이다. 시민들의 혈세가 무엇보다 도쿄의 원폭 기지의 유지에 쓰이는 것을 막으려는 그녀의 몸부림이 절절히 배어 있다.
마쓰다는 엄마들의 힘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엄마들이야말로 전쟁이 아니라 ‘평화’, 죽음이 아니라 ‘생명’, 타향이 아니라 ‘고향’의 상징이자 대지를 비추는 태양과 같은 존재라고 믿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녀가 모스크바의 여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와 “고향의 넓고 넓은 푸른 하늘/ 고향의 흰구름 피어오른 산들/ 고향 농민의 땀에 곡식이 익는다/ 광대한 논밭/ 어머니 같은 대지와 태양이여/ 태양이여 태양이여/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다/ 익어라 비추어라”(자선집 9권에 수록)라고 노래한 것도 그와 같은 믿음과 무관하지 않다.
- 전쟁 전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
엄마의 마음으로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마쓰다의 활동은 그칠 날이 없었다. 마쓰다는 누구보다도 전쟁 전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작가다. 전쟁이 인간성 자체를 말살하는 동인이요, 무력을 동원해 사상과 자유를 억압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요인임을 누구보다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쓰다는 ‘전쟁 전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라는 제목으로 ‘구원신문’(1997년 1월 5일 자)에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한 바 있다.
나는 문학을 할 셈이었으므로 ‘무산자신문’에 시 등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시를 쓰는 여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M’이라는 이명을 썼지만 ‘그 여자일거야’ 하고 타켓이 되었죠.
끌려간 나는 매우 협박을 당했으나 뺨을 맞는 정도에 그쳤고 금방 나올 수 있었습니다. 특별고등경찰의 격노하는 목소리가 지독했죠. 또한 그 언변이 듣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이년, 새끼”라는 표현을 했어요. 아버지는 ‘놈’으로, 부인은 ‘년’, 어린애는 ‘새끼’라고 호칭했습니다. “어린애를 업고 운동 따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이 멍청이”라고 했죠.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어요. 천황제 경찰의 빈민에 대한 대우는 훨씬 차별이 심하죠. 권력이라는 것이 더러워요.
마쓰다의 체험은 어떤 사건, 사고, 또는 그것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계기를 만나면 어김없이 되살아나서 분노와 결기로 분출된다. 굴복이나 좌절의 방향으로 꺾이지 않고 굳은 의지를 수반, 가해 주체에 대한 강력한 저항으로 현재화되는 것이다.
예컨대 자신이 자란 아라카와 탄광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대처는 남달랐다.
83세의 고령임에도 잔뜩 성난 표정과 격렬한 항의의 목소리에는 종종 탄광 노동자를 위한 거친 숨결이 담겼다. 마쓰다가 자신의 고향 탄광을 떠올리며 진폐 피해자의 소송 지원에 나선 것은 알려진 일이다. 탄광 노동자가 오랫동안 탄광에서 분진 가루를 흡입한 나머지 폐 손상으로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방관하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마쓰다의 탄광 노동자에 대한 지원은 만년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나가사키 후쿠쇼(北松) 진폐 소송, 도난(道南) 진폐 소송, 미쓰이 광산 본사 연좌, 나가사키 진폐 소송, 미야기현 호소쿠라(細倉) 광산 등 각 지역의 진폐 소송과 투쟁에 관여하고 진폐 소송 집회에 나서서 피해자들의 지원에 진력했다. 그런 지원활동에 마쓰다의 예리한 펜촉의 움직임 또한 빠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각 현장 노동자에게 큰 힘이 됐다.
- 진폐 없는 21세기로 -
향기 나는 대기와 햇볕과 땅의 풍요로움
이 아름다운 지구에 인간으로서 태어나
그 혜택을 충분히 누릴 여유도 없이
밤낮없이 땅 밑에 있으면서 분진투성이가 되어
자원을 계속 파내던 노동자를 기다리던 것,
그것은 빈곤과 전쟁과 재해와
빼앗긴 공기와 죽음의 고통을 안겨준 진폐였다.
일본의 서쪽 끝, 나가사키 후쿠쇼의 땅에서
진폐를 용서하지 말라는 외침이 전국 노동자의 혼을 불러일으켜
탄광이나 광산이나 조선(造船)이나 터널 등 많은 분진의 직장에서
진폐가 없는 21세기를 향한 투쟁은
인간 노동자의 존엄을 걸고 지금 시작되었다.
진폐 피해자로 눈을 감은 영혼이여! 편안히 잠들라. ―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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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마쓰다는 1980년 후반에 이르자 자신의 삶과 문학을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자신의 지나온 과거와 활동을 토대로 시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아 1987년 여름 ‘발로 쓴 시, 시화 10편’을 간행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어린애와 문학’, ‘여성 수상(隨想)’, ‘다키지, 유리코, 고리키’, ‘사람과의 만남’, ‘역사와 문학’ 등 평소 자신의 삶과 문학에 대해 되돌아본 글 37편을 엮어서 ‘사는 것과 문학과’를 펴냈다.
<김정훈·전남과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