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자치 정상화, 기초단체장 책임이다 / 임우진

2022년 07월 03일(일) 19:14

임우진 민선 6기 광주 서구청장

민선 자치시대 개막 후, 제8기 시장·군수·구청장이 지난 7월1일 취임했다. 먼저 취임을 축하하면서 그동안 꿈꾸어온 건강하고 행복한 지역공동체를 꼭 실현해 큰 명예와 보람을 남기기 바란다. 또한 누구보다도 기초자치를 중시해온 필자로서 새로운 의욕으로 출발하는 기초자치단체장에게 몇 가지 당부를 드리고자 한다.

먼저 기초자치의 막중한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필자는 평생 많은 일을 했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애착이 가는 자리가 구청장이다. 필자가 특별히 기초자치를 중시하는 것은 기초자치를 통해 민주시민의식을 육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초자치를 통해 국가사회의 대립갈등을 풀 수 있는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삶의 피로를 씻고 의욕을 북돋아 주는 마을공동체를 육성하고, 지방자치의 질적 수준과 자치의식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영국의 제임스 브라이스(J. Bryce)가 말한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학교인 동시에 그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제도’라고 한 단정적 표현을 깊이 음미하기 바란다.

기초자치를 통해 민주·공동체·주민자치 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것은 기초자치의 핵심영역인 생활서비스공급과 주민자치육성이 어느 일방이 아닌 행정과 주민의 협치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주민이 쓰레기를 분리배출하고, 골목길을 스스로 관리하는 등 분담 협력하고 있는 것과 같다. 주민자치를 하는 것도 관의 역할을 줄이고 점차 민의 역할을 확대해 가면서, 주민의 자치의식과 역량을 함양해 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처럼 기초자치는 행정과 주민의 협치와 주민자치 육성과정에서 향토애와 헌신정신, 봉사와 참여, 양보 타협, 비판정신 등 주민의 민주시민의식과 공동체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역할을 주도해야 할 기초단체장의 위치는 참 어려운 자리다. 주민의 생활을 돌보고 지역을 발전시키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주민과 지역을 위해 일 잘하는 것이 반드시 소속정당의 인정이나 주민의 지지를 보장해 주지 않는 딜렘마적 환경 때문에 더욱 어렵다. 우리 정치의 후진성과 대중민주주의의 취약성, 지역독점 정당구조로 인해, 시장·군수·구청장이 본연의 일보다는 정치적 세력확대를 더 중시할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는 점이 우리 자치의 근본적 문제환경인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기초자치를 통한 자치발전이나 지역발전을 기대할 수 없음은 물론, 민주주의 학습, 공동체 성숙, 주민자치 성숙 등 의식의 변화도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변화들은 기초자치가 민주적 합리적으로 운영될 때 얻을 수 있는 가치다. 우리는 지역독점정치, 후진적 정치환경 등으로 인해 민주적 합리적인 정도자치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기초자치의 이점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자치공동체와 주민이 주인인 지역사회를 만들겠다는 꿈을 안고 출범한 시장·군수·구청장들도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아 새로운 각오로 기초자치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할 때다. 새로 취임한 시장·군수·구청장들께서는 단기적인 정치환경이나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말고, 주민의 삶을 돌보고 공동체를 육성하는 본연의 소임에 매진하는 것이 결국 최선의 길임을 알기 바란다. 이 길이 기초자치의 본질에 맞는 발전은 물론, 단체장 본인의 만족감과 자부심을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궁극적으로 주민의 지지를 얻고, 혼탁한 정치권에서도 당당하게 명예를 지키고 승리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이제 단체장이 앞장서서 그동안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기초자치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기초자치의 저해요인을 제거하고 성숙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런 뜻에서 기초자치 관련한 몇 가지를 당부드린다.

첫째, 기초자치 성숙을 저해하는 내외부의 정치적 영향을 억제하고 제거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기초자치에 정당이 참여함은 물론 지역독점 정치구조까지 중첩되어 있어 그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잦은 선거로 외부의 정치세력이 마을공동체, 주민자치의 분열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마을자치가 정치세력에 휘둘리지 않고 주민자치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특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마을지도자가 외부 정치인과 연결되어 마을의 분열을 주도하거나 자치회 임원출마를 위해 자치회 내에 세력을 구축하여 주민자치회 내부의 정치적 갈등이 심각한 곳이 많다.

둘째, 단체장이 주민자치의 건전 육성을 위해 솔선수범해야 한다. 주민자치를 제대로 육성하려면 단체장부터 주민지도자를 정치조직화 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마을의 일은 마을지도자, 주민에게 맡겨야 한다. 가능하면 단체장은 물론 행정이 개입하지 않고 마을 안에서 합리적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각종 재정지원은 자생력을 약화시킬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구태문화를 청산하고 청렴사회를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셋째, 기초자치의 성숙발전을 위한 법 제도 입법화와 정비를 위해 노력한다. 기초자치의 정당참여 배제, 연동형 비례대표제 정비, 민주시민교육 제도화, 주민자치법 제정, 지역정당제 도입 등이 그것이다.

한 시대의 시민의식은 국가사회적 과제 해결과 사회 성숙발전의 관건으로서 그러한 시민의식 성숙을 위한 기초자치의 정상화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대적 과제다. 그러나 우리의 기초자치는 정치라는 굴레에 포박당해 제대로 걸어가지도 못하고 휘청거리고 있다. 굳건한 각오로 새롭게 취임한 민선 8기 기초단체장에게 굴레를 벗겨내고 기초자치를 튼튼히 바로 세울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