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원(願) / 이명숙

2022년 07월 03일(일) 19:14

이명숙

햇살 실핏줄 따라 연잎 몸을 펼치면 연밥 따는 손길 옆 폴짝 뛰는 개구리

살며시
눈꺼풀 여는
연못이야 한 장 경전

해 질 녘 하늘머리 오색 등 내걸리면 그리운 이 떠나간 하루 설법도 없이
한 송이
연꽃 피우기
화엄으로 가는 길
(시조집 ‘튤립의 갈피마다 고백이’, 문학들, 2022.)

[시의 눈]

장마로 조금은 우울한 날입니다. 백련지(白蓮池)는 이럴 때 정화하러 가는 곳이지요. 칠월 태양 펼쳐진 못에 녹색이 그득하군요. 평생 읽을 수 없는 ‘경전’이란 말이 실감나네요. 얼마 전 떠나간 사람이 올 듯도 한 날입니다. ‘해 질 녘’ 눈시울에 보호색 삼아 감출 붉은 노을이 되쏘입니다. 그저 허공 손짓으로 마중할 뿐, 이름이 매양 입술에 ‘설법’인양 돋아요. 연잎에 올라온 자태를 혹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무료한 두 손을 모으지요. 순간, 천지 백련에 한 홍련이 ‘화엄’처럼 다가옵니다. ‘아 홍련!’ 지나던 중년 부인이 해까닥 날 쳐다봅니다. 뭐 허망한 ‘원’(願)이지요. 난 헛디딜 발을 얼른 고쳐서 섭니다. 이명숙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나 제주에 삽니다. 그는 2014년 영주일보 신춘문예와 ‘시조시학’으로 등단했고, 시조집 ‘썩을’(2017), 100인선집 ‘강물에 입술 한 잔’(2019)을 출간했습니다. 재기발랄한 화법으로 내밀한 기억층에서 의식과 무의식을 뒤적여 내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